전편인 ‘생의 한가운데’와 공유하는 소재가 있으나 별개의 이야기임으로, 이해를 위해 전편을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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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은 서울의 자투리에 서있다. 큰 도로를 따라 조금만 남쪽으로 내려가면 ‘경기도에 어서오십시오’ 팻말이 있다. 그래도 수도는 수도라는 듯, 여기저기서 불빛이 번뜩였다. 한밤에도 식물이 광합성을 할 수 있을 만한 길거리. 머나먼 곳에 붙박힌 항성들의 흐릿한 빛은 지상의 빛에 몽땅 잡아먹혔다. 가만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달도 어둡게 보였다. 제주에서 김포로 돌아가는 비행기의 불빛이 겨우 보였다. 여상은 깜빡이며 호선을 그리는 초록과 빨강의 점이 꼭 유성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있자면 길 어귀에서 우당탕 소리가 났다. 왼쪽을 돌아보면 넥타이를 풀어젖힌 중년의 남자들이 곤드레만드레 하며 어기적대다 넘어진게 보였다. 오른쪽을 돌아보면 해장국집 옆 작은 골목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다 인기척에 도망치는 고양이의 꼬리가 보인다. 시각과 청각은 쉴 일이 없다. 여상은 제가 떠나온 시간을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개발되지 않았고, 이렇게까지 혼잡하지 않았고, 이렇게까지 모두가 깨어있지 않다. 그 사이 여상은 기척을 느꼈다.
“불 있어요?”
사람이 가진 다섯 개의 감각. 눈과 귀와 코와 혀와 피부가 일한다. 그러나 여상은 이 미래에 와있자면 꼭, 자신이 더이상 사람 같지 않다고 느꼈다. 예를 들면 상어. 아주 어린 시절 읽었던 과학 백과나 대학생일 적 읽었던 두툼한 책에 적혀있었다. 상어는 자기장을 느낀다. 무언가가 시야에 잡히지도, 들리거나 만져지지도 않고 그 기척을 알아낸다. 어릴 적에야 상어나 호랑이, 또는 공룡 따위가 크고 위협적이어서 멋진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다 자란 스스로가 상어 같다고 여겨진다니. 여상은 속으로 스스로를 타박하면서도 이는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불 있어요?’ 하고 묻기도 전에, 여상은 그를 알아차린다. 순간 자신이 희한한게 아니라 그가 유별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게 옳은 일이라고 여긴다. 파직파직. 번개 같은 사람. 상어가 될 수 없고 되고 싶지도 않은 자신을 기꺼이 바다 한가운데로 밀어넣는 사람. 여상은 그를 처음 본 날 이후로 종종 같은 꿈을 꾸었다. 다리가 붙고, 팔과 발은 거칠거칠한 지느러미가 되는 꿈. 여상이 이 변화를 자각하면 주위는 온통 짠 바닷물로 변했다. 상어에게는 이 지구의 모든 바다가 집이다. 여상은 그 속을 빠르게 헤엄쳤다. 자유롭기 보다는 편안했다. 자신이 응당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처럼.
“없어요?”
서울 귀퉁이 오션 관광 나이트 앞. 밤 열한 시 이전 여성 입장 무료에 안주 반값. 인기 DJ와 개그맨 초청. 이름만으로도 그 값어치가 느껴지는 양주들의 나열.
해장국집 근처에서 깽깽대던 고양이들이 도로를 가르고 지났다. 날랜 몸은 거치적거리는 것이 없으니 소음 하나 없이 고요하다. 그 순간 복기하던 꿈은 연기처럼 흩어졌다. 바다는 오간데 없고 머리 위에는 번쩍번쩍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오션’이라는 네온사인만이 있다. 눈 앞의 그의 얼굴이 여러 색으로 얼룩졌다. 왼쪽 눈썹을 들어올린 터라 신랄하게 드러난 짝눈을 지나치면 가슴팍에 명찰이 보였다. 강호동. 얼굴도 체구도 전혀 강호동 같지가 않은데. 여상은 이를 악 다물었다. 초면에 냅다 웃는 것이 실례라는 것을 잘 안다. 여상은 설렁설렁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나이트 오실래요?”
오른손 엄지와 검지에 디스 플러스. 왼손에는 모토로라 레이저 핑크. 점잖게 말하자면 호객꾼이고 가감없이 들이박자면 삐끼. 강호동이라는 별명도 그의 선배 즈음 되는 사람이 지어줬을 테다―그렇지 않고서야 저 나잇대의 남자애가 원빈이나 강동원을 제치고 강호동을 선택할 리가 없다는 것이 여상의 생각이다―강호동은 수천 번은 해봤다는 듯 능글거렸다. 처세 빼면 시체인 것 같은 야들야들한 어조.
“누님들한테 인기 많을 것 같은데. 테이블 반값에 해드릴께용.”
용용용. 이 세대의 사람들은 저런 식으로 곧잘 애교를 흘린다는데 그걸 직접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니 이것은 강호동이 정말 담뱃불이 없어서가 아니라, 순전 호객을 위한 수작질일 것이다. 여상은 가슴이 판판히 펴지도록 숨을 들이쉬었다.
“죄송해요, 제가 일이 있어서…….”
“맥주 서비스.”
“아니요. 저 바빠요…….”
“진짜 잘 먹힐 것 같아서 그래요. 진짜 잘생겼네. 혹시 연예인 지망생이에요? 아니면 요즘 그, 아이돌 연습생 같은거?”
“저 정말 가야된다니까요…….”
2005년 11월 4일 금요일 23시. 거리에는 김종국의 ‘사랑스러워’가 쩌렁쩌렁 울렸다. 여상은 그런 식으로 집요하게 알랑대는 강호동과 실랑이했다. 여상은 저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에 결국 제 목적을 홀라당 밝히고 만다. 아마 이번에도 그럴테지. 강호동과 여상의 여덟 번째 만남. 그 사이에는 일곱 번의 작별이 있다. 이번에는 어떻게 안녕해야 하나.
시간교정연합 소속 강사원에 대한 항간의 품평. 어리숙하고, 칠칠맞고, 덤벙거리며, 엉뚱한 생각을 잘 한다. 이따금 자신만의 세계에 푹 빠져 누가 제 껍질을 두들기는 것도 모른다. 자격 조건도 우수하고 면접도 미꾸라지처럼 넘겼기에 제법 하는 신입인 줄 알았건만. 실적은 바닥을 기었고 그 덕분인지 사내 평판도 미묘한 위치였다―거기에는 그의 미력한 사교성도 한 몫을 했다―여상도 이것을 잘 알고 있다. 누군가의 배면에서 나뒹구는 뒷말이란 두 귀와 눈치만 있다면 금방 낚을 수 있는 피라미 같은 것. 정상 범위의 청력과 눈 굴리는 재주가 있는 여상은 다 알고 있었다.
시간교정연합의 연구부에서는 늘 금속 특유의 비린내가 났다. 초끈합금의 냄새다. 백금과 철과 이리듐, 그리고 아직 그 어느 학회에서도 발표되지 않은 금속 원소를 조합해 만들어졌다. 시간교정연합의 모두가 이것이 없으면 일할 수 없다. 시공간을 넘어 임무를 전달받는 팩스나 전화기, 그리고 현장 요원을 이리저리 보내는 시간 가속기와 감퇴기. 연구부 소속의 직원들은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여상에게는 그 자부심이 희박했다. 원체 없었던 것은 아니고, 입사 이후부터 슬그머니 옅어진 결과다. 하루 종일 쇳물을 다루고, 굳은 표면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니 딴생각이 구름처럼 피어났다. 나도 이걸 써서 어디로든 가보고 싶어. 이걸 만드는 데에만 그칠게 아니라, 직접 보고 느끼고 싶어. 여상 생애 첫 용기였다. 그게 부서 이동 신청의 발단이었다. 현장 조합원은 꼭 공석이 한 두 자리 있었다. 과거나 미래에 가서 돌아오지 않게 된 사람들이 낸 구멍이란다. 설마 순직한 걸까? 섬칫한 마음에 이리저리 알아 본 후 여상은 제가 얼마나 순진하게 생각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과거나 미래. 그곳에 정착하고 싶어서. 그래서 현재로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매서운 결단력이었다. 아마 여상은 평생 가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여상의 평가를 들먹이자면 부서 이동은 요원하기만 한 일이다. 여상도 어느정도 마음을 비운 상태로―물론 스스로가 소망한 것이기에 결코 모든 욕심을 내려둘 수는 없었지만―결과를 기다렸다. 그러나 성공이었다. 여상은 들뜬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순한 표정으로 연구실 구석의 제 책상을 묵묵히 비웠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쟤가 어떻게’ 같은 수근댐을 피부로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상의 지지부진함 뒤에 꼭 따라붙는 말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여상만의 장점은 그 끈기다. 주눅이 들어도 매달리고 본다. 독종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끈기의 뒤로는 탐구정신이라는 말로 포장된 높은 호기심이 따라붙었다. 강사원 그거 알아요? 연구자들이 탐험가가 되는건 사실 꽤 자연스러운 일이래요. 뚫어져라 바라만 보는걸 못 이겨서 직접 뛰어들게 되는거죠. 내내 여상의 옆자리에 있던 사원은 그렇게 인사했다. 커피가 필요해보이는 피로한 얼굴이었다. 그 말에 희끄무레하게 웃은 여상은 조심히 연구실 문을 열고 나섰다. 닫히는 두툼한 문을 보며 이제 여기 다시 올 일은 없겠지, 하며 모종의 쓸쓸함도 느꼈고.
여상의 집은 전화국으로 위장한 본부 근처의 빌라다. 밤이면 인적이 드물어 야밤에 소리치는 사람이 있으면 온 방의 사람들이 다 깨어날 지경이다. 여상이 묵는 호수에는 거실 겸 부엌, 욕실, 그리고 방이 하나 딸렸다. 여상은 취직 이래 그곳을 참 애매한 용도로 사용해왔다. 거실에 이불을 펴 잠깐 잠을 자고, 가끔 부엌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배를 채우고, 드물게 시간이 맞아들면 방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인 텔레비전으로 축구 경기를 봤다. 생활감이 꽝이었다. 평소 여상의 생활 반경 또한 극도로 좁았다. 빌라, 빌라와 본부 사이의 작은 공원―하도 작아 공원보다는 잘 정돈된 나들목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렸다―그리고 본부. 이따금 반찬을 싸들고 오는 가족들은 여상의 빌라에서 쇠 냄새가 진동한다고 했다. 제 일이 집까지 스며들다니. 그리고 아직도 빠지지 않았다니. 그렇게 생각하니 집도 영 집 같지 않았다. 쉬는 것도 영 편치 않았고.
현장 요원이 되니 도리어 쉬는 시간이 늘었다. 임무에 투입되지 않으면 퇴근 시간도 일정했다. 연구의 성과는 사람을 갈아 도출된다더니 그 말이 틀린게 하나 없다. 여상은 설풋 얼룩진 천장을 보며 두 다리를 쭉 뻗었다. 그러다 보면 이 빌라가 편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방금 잠근 수도꼭지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고, 바람에 창틀이 살짝 기우뚱대고, 미적지근한 바닥에 온기에 여상은 곧잘 일어났다. 그리고 집안을 맴맴 배회했다. 여상은 그럴 때면 자취하느라 떠나온 집을 생각했다. 집에서는 무얼 했나. 새벽녘까지 공부와 씨름하다 쪽잠을 자는 것. 여섯 시가 되면 일어나 욕실에서 물을 트는 것. 온통 그 기억뿐이다. 그래서 여상은 사전을 뒤적거렸다. 대체 집이 뭘까? 여상은 깨알 같은 글씨를 읽어내렸다. 사람이나 동물이 그 속에 들어가 살기 위해 지은 건물.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집안. 여상은 사전을 닫고 골몰했다. 여상은 집에 산다. 그러나 집에 있지 않는다.
임무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들리는 곳은, 그곳의 숙소다. 쥐가 있는 하숙집이라 밤새 덜덜 떨었던 적도 있고, 대로변의 고시원이라 소음에 시달린 적도 있었다. 매일 같이 고성이 들리는 여관 달방에도 있어 봤다. 그것도 손에 꼽을 만한 일이다. 대개는 폭신한 깔개나 침대가 있는 깔끔한 호텔이었다―심지어 미래로 가면 갈수록 방은 세련되게 바뀌니 그걸 신기해하는 맛도 있었다―갓 세탁한 침구류에서 나는 포근한 냄새 속으로 몸을 묻고 있자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매일 밤마다 침대에 누워 다음날 아침 기상이 얼마나 힘들지를 가늠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역시 한 때 몸만 뉘이는 곳. 여상은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야 하는 사람. 그러니 제 집보다 편안하다 한들 이 방을 집으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상어는 정말 바다를 집으로 삼을까. 고양이는 정말 길목을 집으로 여길까. 사전에 적힌 집의 의미도, 상어와 고양이의 생태도 지극히 인간 중심적이다. 여상은 거기서 생각을 마쳤다. 쓸데없이 철학적인 공상으로 빠져들어 하루를 꼬박 잡아먹는 것은 그닥 멋진 일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지금 생각나는거 그대로 말해도 돼요?”
강호동은 제 몸을 물리더니 팔짱을 꼈다. 어찌나 대단한 말을 하려고 그러는지 땅이 꺼져라 한숨도 쉬었다. 여상은 손에 들린 사진을 다시 품에 넣으며 끄덕였다. 강호동은 불현듯 여상과의 거리를 좁혔다. ‘사랑스러워’는 끝나고 싸구려 일렉트로니카가 정신없이 울렸다. 여상은 잔뜩 긴장했다. 원체 말귀가 어둡다는 말을 자주 듣고 살았다. 강호동의 말을 들으려면 제 귀를 바짝 세워야하는데 사방은 시끄럽다. 남은 방법은 강호동이 좁혀온 거리를 버텨니는 것 뿐. 여상은 작게 움츠리고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강호동이 모르게끔 손을 조용히 꾹 쥐었다 쫙 펴는 것을 반복했다.
“지옥에서 왔다고 해도 믿겠네.”
진짜 개팔자가 상팔자인가봐, 그쵸? 이렇게 막돼먹게 생겨도 예뻐해주는 사람이 있고. 강호동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제 몸을 물렸다. 여상은 단숨에 힘이 빠졌다. 그리고 제가 내밀었던 사진을 다시 꺼내보았다. 가로 사 인치 세로 사 인치의 인화된 필름 사진. 그 안에는 짧은 베이지색 털을 가진 치와와가 있다. 머리는 조그맣고 눈은 왕방울 같다. 그리고 강호동의 말대로, 지옥에서 왔다고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 개는 빼죽빼죽한 이빨은 물론이거니와 선홍색 잇몸이 다 드러나도록 입을 벌렸다. 그 커다란 눈은 얼마나 뜨였는지 흰자가 다 보였다. 반질반질한 검은자에는 수 틀리면 누구든 목덜미를 물어뜯겠다는 각오가 서려있었다. 발톱도 제때 관리가 되지 않은 것인지―저렇게 달려든다면 누가 그 발톱을 깎을 수 있을까 싶다―길고 날카로왔다. 초점이 맞지 않아 흐려진 배경에는 종이나 천 같은 것이 벅벅 찢겨져 있다. 아마도 이 개의 소행일 것이다.
“얘 이름이 해피라고요?”
“럭키에요.”
“왜 케로베로스가 아니지?”
강호동이 다시 몸을 기울였다. 둘의 그림자 사이로 ‘오션’이 내뱉는 알록달록한 빛이 떨어져 사진을 물들였다. 하필이면 개의 눈 주위였는데, 그 덕에 개의 눈이 공포스럽게 번뜩였다.
“얘 무는 개에요?”
“그건 몰라요.”
“왜 몰라? 그쪽 개 아니에요?”
“남의 개에요.”
“사람이 되게 착하네. 남의 개도 찾아주고.”
반말과 존댓말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건 강호동의 특기다. 여상은 이미 익히 알고 있으니 왜 자꾸 반말이냐며 구태여 따져 묻지 않았다. 그리고 이정도 말을 섞었으면 꼭,
“말을 엄청 서울 깍쟁이처럼 한다.”
여상을 이렇게 꼬집어왔다. 요컨대 요새 젊은 사람들이 쓰는 말씨가 아니라는 뜻이다. 완전한 이방인. 여상은 그걸 누군가가 알아차릴 때마다 들개를 만난 너구리처럼 바짝 굳고는 했다. 세 번째로 강호동을 만났을 때. 강호동은 여상에게 냅다 라면을 끓여 대접했다. 튿어진 라면 봉투의 패키지는 제가 떠나온 1989년 4월 23일의 것과는 영 달랐다. 이게 이렇게 생겼었나? 여상은 제 신변을 싸그리 잊은 채 놀라워했다. 강호동은 여상을 희한하게 바라봤다. 여상은 그 눈초리에 수 초는 어질어질했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즈음에는 이마가 축축했다. 여상은 식은땀을 닦아내며 이것 참, 어려운 일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좀처럼 거짓말이 익숙해지지 않는 성정. 여상은 갑자기 세상 어딘가에서 암투중일 스파이들이 아주 멋스러워 보였다. 이런 초등학생 수준의 감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여상의 가슴이 그때까지도 펄떡펄떡 뛰기 때문이었겠다.
손수 라면을 끓여왔다는 것은 제 집에 초대했다는 것. 강호동은 참, 거리감이라는 것이 없는 인간이었다. 본지 며칠이나 됐다고 냅다 제 자취방에 데려다 앉혀놓고. 밥을 먹이고. 자고 가라고 안달이었다. 동네 어귀의 초등학생들이 와르르 몰려 등교하는 시간이었다. 저녁에 일어나서 아침에 자는, 개 같이 벌어서 정승 같이 쓰는게 목표라는 강호동. 상을 물린 강호동의 얼굴은 정말이지 피곤해보여서, 여상은 구태여 집에―실은 이 주변부의 호텔에―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잠 안 오면 나 자는거라도 보고 가. 그런 뻔뻔한 말에는 질색을 했다. 정말 강호동이 자는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을까봐. 그건……싫어. 몇 번을 생각해도 싫어. 이것은 모든 현장 요원들의 가장 큰 딜레마이자 일 순위의 행동수칙이다. 미래와 과거 그 어디로 떠나든 무언가를 남기고 오지 말 것. 그것은 유류품은 물론이거니와 미련 또한 포함된다.
“혹시 애인이 기르는 개?”
여상은 펄쩍 뛰며 부정했다. 저 애인 없어요. 정말 없어요. 강호동은 격한 부정을 두고 미심쩍은 눈치였으나 구태여 캐묻지 않았다. 이건 여상이 가장 좋아하는 강호동의 면모다.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우선 신용하고 본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사기당할 만큼 호락호락하지는 않으니 사람이 시원스레 보이기에는 딱 좋았다.
개. 럭키의 주인은 강호동과도, 여상과도 결점 없이 완벽한 타인이다. 개의 주인은 지금 이곳의 기준으로는 고작 여섯 살 난 꼬맹이이다. 오션 관광 나이트에서 도보로 팔 분 정도 거리에 산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며 드러누워 울고, 막상 보내놓으면 집에 가기 싫다며 드러눕는 천덕꾸러기. 실은 천덕꾸러기라는 말이 마냥 가벼우리만치 버릇이 고약한 일면도 있다. 넉넉한 집의 삼대독자. 금이야 옥이야 키운 아들놈이 엇나갈까 싶어 책임감을 길러보자는 명목 하에 들인 치와와. 그게 럭키다. 그 집 아드님은 개를 키우며 성격이 눈에 띄게 누그러졌다만, 오히려 개가 아들의 옛 모습을 닮아버렸다. 수시로 짖고 물고 뜯고 찢었다. 그러니 그 부모가 난장판이 된 집안 꼴에 이골이 나지. 개를 찾아줄 의욕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 아들내미는 지금 개의 빈 자리에 서러워 하다가 잠들었을 터다. 정말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다. 그 집 아들이 제대로 엇나가, 흔히 말하는 악인이 되어버리는건 문제지만.
그 집 아들의 성장과정에 개입해 개과천선시켜라. 그게 여상의 임무다. 강호동을 여덟 번째 만났다는 것은 실패만 일곱 번을 했다는 이야기다. 건실한 교회 청년 노릇. 옆집의 성격 좋은 삼촌. 어린이집의 보조 교사. 동네 바보 형. 이런저런 시늉을 하며 그 집 아들을 교화시키려 백방으로 노력했다. 싸그리 실패했다. 현장 요원은 보통 실패를 경험한다지만 그것도 서너 번일 때의 이야기다. 무려 일곱 번을 실패한 뒤 여상은 꼼짝없이 가시방석에 올랐다. 이걸 어쩔 셈이냐. 다음엔 무얼 조사하고 고쳐놓을거냐. 그와중에 여상이 짚어낸 요인은 개였다. 그 집 아들의 성장기 중 잃어버린 개. 황과장은 뚱딴지 같은 소리에 펄쩍 뛰었다. 얼굴이 토마토처럼 벌개져 호통쳤다. 여상은 잔뜩 움츠린 채 고성을 견뎌냈다. 황과장이 소리를 죽일 줄 모르는 듯 소리쳐 물었다. 왜 하필 개냐?!
예상한 질문이었다. 여상은 암기해온 답변을 읊었다. 개는 아주 오랜 기간 인류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인류 또한 개를 아주 친숙하게 여깁니다. 사람은 개를 반려동물로 들였을 경우 개에게 쏟는 양과 비례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애정을 보입니다. 또 하나의 가족인 셈입니다. 어린이가 개의 보호자일 경우 개와 애착을 쌓기 용이합니다. 활동량이 맞먹고, 책임감을 가짐으로서 제 행동을 가다듬게 되며, 개를 마냥 돌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친구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성인은 성장과정 중 애착 대상의 죽음이나 절연 등을 겪지만 어린이는 아직 경험이 부족합니다. 개를 잃었다는, 심지어 나머지 가족이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은 충분히 트라우마가 될 수 있어요. 유아기의 트라우마는 올바른 심리적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고…….
여상은 몇 차례 버벅이며 긴 말을 마쳤다. 황과장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여상에게 질린 것 같기도 했다. 한참 뒤. 결국 그의 입이 비실비실하게 떨어졌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봐.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나도 이제는 모르겠다. 거기에 대고 여상은 제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아이고오, 황과장이 곡소리를 냈다.
여상의 호소는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일 뿐이다.
여상은 어떻게든 그를 만났다. 저녁, 밤, 그리고 새벽. 그 시간대에 오션 관광 나이트 앞을 지나다니면 아주 높은 확률로 마주쳤다. 그곳이 그의 직장이니까. 시종일관 높은 목소리로 누나 잠깐만, 형님들 잠깐만, 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여상을 발견하고, 불이 있느냐며 말을 붙였다. 그리고 꼬드겼다. 여상은 내내 거절했다. 사람이 북적북적 모여 이명에 걸릴 듯 크게 노래를 듣고, 춤을 추고 말을 섞는 자리가 꺼림직했다. 그는 한참이나 여상을 붙잡고 있다가, 마지 못해 제 명함을 내밀었다. 노란 바탕에 빨간 글씨로―여상은 미신에 잘 홀리는 편이므로 이것이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었다―강호동 석 자 아래에는 핸드폰 번호가 검은 글씨로 적혀있다. 놀 생각 있으면 입구에서 꼭 찾아줘용. 그렇게 말하며 취한 사람들을 찾으러 떠났다.
아침과 낮이라고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이 안 와서 커피나 한 잔 하려고. 집에 먹을게 없어서 뭘 좀 사려고. 그런 이유로 동네 어귀를 어슬렁대다 여상과 마주쳤다. 그는 여상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우리 어디서 만난 적이 있지 않느냐’라는 말로 살갑게 다가왔다. 여섯 번째 그를 만났을 때에는 아니다, 사람 잘못 보셨다, 하며 딱 잡아뗐다. 괴한 취급하듯 도망쳐 나왔다. 그러다 저녁에 나돌아다니면 또 마주쳤다. 그러더니 한다는 말이 이렇다. 이제 어디서 만난 적 있는 사이네? 물론 그 뒤로는 정신 쏙 빼놓는 호객행위의 연속이었다. 물론 강호동의 행동 패턴을 기록해두면 마주치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여상은 그 집 아들 덕에 내리 쪽잠을 잤다. 무슨 어린애가 하루 종일 공부도 안 하고 쏘다니기만 해. 그러다 보면 어떻게든 그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불 있어요? 가스가 다 떨어져가지고. 백 원 있어요? 거스름돈이 모자라가지고. 아주 미칠 노릇이었다.
그런고로 개를 찾겠다는 말은 일종의 선언이다. 더이상 그를 마주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다. 칠전팔기라는 말을 떠올려본다. 동아시아에서 팔은 꽤나 자주 쓰이는 숫자다. 사주팔자의 팔. 신화 속에 등장하는 머리 또는 팔이 여덟 달린 생물. 여덟 갈래로 나뉜 지옥. 순전 크고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절체절명을 뜻하는 숫자라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아홉은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개를 찾아도 미래가 바뀌지 않으면 상사는 여상에게서 임무를 앗아갈 것이다. 느리지만 꾸준한 것이 여상의 유일한 장점이지만, 이 임무에만 일 년을 쏟아부었다. 일 년간 실적이 전무한 셈이다. 그리고 다른 임무가 내려질 것이다. 여상은 무수히 많은 못마땅한 눈초리 아래에서, 더이상 2005년의 이곳으로는 발도 들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만일 개가 정말 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지. 여상에게는 드디어 실적이 생기고, 혹자는 어떻게 이렇게 기발한 생각을 했느냐며 칭찬할 것이고, 그러면 줄곧 남에게 제 노력을 인정 받고 싶던 여상도 한시름 놓을 것이며……. 그러면 모든 것이 완벽하게 끝난다. 그리고 나는,
“사진 좀 찍을게요.”
강호동은 제 폴더형 핸드폰 뚜껑을 열었다. 반딱반딱한 분홍색. 렌즈를 가까이 그리고 멀리 대며 가늠하던 강호동은 호쾌하게 셔터를 눌렀다. 찰칵 찰칵 찰칵. 세 번을 누르고도 한 번 더. 그리고는 제 명함을 내밀었다. 노란 바탕. 빨간 글씨. 검은 숫자. 여상이 명함을 받아들었다. 이제 ‘놀 생각 있으면 입구에서 꼭 찾아줘용’ 하고 사라질 참인데.
“왜 그쪽은 번호 안 줘요?”
“네?”
“내가 이놈 찾으면 어디로 연락하라고.”
수많은 변수. 새로움보다는 두려움. 여상은 꾸물대며 제 핸드폰을 꺼냈다. 강호동의 얼굴이 화색을 띄었다.
“와. 나 레이저 라임색 처음 봐.”
여상은 쉽게도 볼을 붉혔다. ‘오션’은 이제 막 초록에서 하늘로 바뀌었다. 본연의 낯빛을 그대로 들킬 일이 없어 안심할 수 있을 터인데 자꾸 입 안이 타들어갔다. 그러나 강호동은 여상의 안색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키패드를 꾹꾹. 무미한 동작음이 여러 차례.
“내 이름으로 저장했거든요? 나 사실 강호동이라는 이름 안 좋아해. 주윤발 내가 하고 싶었는데 그새끼가 짜증나게.”
정우영. 여상은 화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이미 알고 있어요.
여상은 비디오 방에서 테이프 하나를 빌렸다. 영웅본색. 여상의 시대에서 한바탕 유행했던 영화였으므로, 여상도 이 영화를 못해도 세 번은 보았다. 호텔에 딸린 자그마한 텔레비전 앞에 무릎을 끌어안은 채로 앉아서, 심심풀이용으로 사둔 초콜릿―미래에서 사는 편이 훨씬 저렴하다―을 우물거렸다. 가끔 입가에 녹아붙은 초콜릿을 손으로 닦아냈다. 체온에 끈끈해진게 무작정 달기만 해 기분이 좋았다. 영화가 막바지에 치닫자 마크가 구슬프게 중얼거렸다. 홍콩의 야경이 이렇게 아름다운줄 몰랐어. 하지만 오래 못가니 아쉬워. 여상은 이곳저곳 떠돌며 주워들은 광둥어를 어설피 따라하며 대사를 제창했다. 우영의 별명에 제 뜻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음은 짐작했으나, 주윤발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싶어했을 줄은 몰랐다. 어쩌면 영영 모른 채 지나가버릴 수도 있었다.
메인 테마가 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사이 느릿하게 짐을 풀었다. 수트 케이스 안에서 잡다한 것들이 나왔다. 여벌의 옷. 여분의 신발. 가짜 신분증. 업무일지와 필기구. 가장 아래에는 묵직한 전화기가 들어있다. 여상이 그렇게 매달렸던 초끈합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무게를 이겨내며 전화를 설치하고 옷걸이를 들척였다. 그러고 나니 제법 사람이 사는 방 같았다. 그러니까, 언제든 인기척이 들려와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이 된 셈이다.
우영은 남의 개를 찾아주는 여상을 보고 착하다 평했다. 여상은 착하다는 말을 뒤집어 쓰고 살았다. 순해. 선해. 무해해. 착하다는 말은 이렇게 수많은 말로 변주할 수 있으나 달리 말하면 이렇다. 잘 속아. 사람이 쉬워. 물러터졌다. 여상은 너 참 착하다, 라는 말에 미소지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조금 불쾌했다. 나는 언제나 착하지는 못해 당신의 속을 썩일거라는 두려움과 얕잡히는 것이 슬픈 알량한 자존심이 혼재했다. 여상이 보기에는 우영도 참, 착했다. 남의 개를 찾고있는 남을 선뜻 도와주는데. 이건 친절하다기 보다는 착한 작태다.
그렇게 우영을 생각하고 있자면, 여상은 불현듯 부끄러워졌다. 우영이 여상의 번호를 얻어간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마지막이라 특수한 상황이 몰려드는 걸까. 여상은 그 어떤 말로도 명명되지 않은 법칙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 시간대의 사람 구색을 한다며 맞춘 모토로라 레이저 라임. 똑같이 분홍색인건 소름끼칠까봐 남몰래 한 선택. 정작 그걸 발견한 우영은 순전히 기뻐했는데. 여상은 그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씻다가도. 잠에 들려다가도. 일어나서 가만히 있다가도 발버둥치고 싶었다. 결국 충동을 참지 못하고 바둥대다 보면 부끄러움은 잠시 소거됐다. 그게 오래 가지는 않았지만. 여상은 멀거니 앉아있다가, 제 핸드폰의 라임색 덮개를 들어올렸다.
[근데 개를 무슨수로찾아요 이름부르면 오나]
[근데이름 불러도 안올것같이생겼는데]
[근데사례금있음?]
영화를 보는 사이. 우영에게서 문자 세 통이 연달아 왔는데, 모조리 ‘근데’로 운을 띄웠다. 여상은 서툰 손짓으로 키패드를 눌렀다. 오타가 제법 많이 났다. 영 이상한 자모음이 눌리기도 했다. 사 례 금 드 려 요 1 0 만 원 줄 게 요 . 누구도 나서서 찾지 않으니 사례금은 여상의 수중에서 나가야 한다. 이 일에 십만 원이라는 가치를 매길 수 있나. 그 고민은 여상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만다. 그래. 우영은 착하지 않을지 모른다. 사례금을 운운하는 것을 보아하니 제 잇속을 바득바득 챙겨가며 사는 놈일 것이다. 오히려 그게 여상의 마음을 가볍게 했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 여겨졌다. 여상이 전송 버튼을 누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답신이 도착했다. 전단지 붙였어요?
직장인들을 상대하는 고깃집이 슬슬 문을 열기 시작했다. 하교하는 아이들이 저마다 모여 아스팔트 바닥에 발을 쿵쿵 굴렀다. 오션 관광 나이트의 네온사인은 아직 잠잠하다. 우영이 골목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나왔다. 검은 티셔츠에 검은 트레이닝복 바지. 또 검은 슬리퍼. 그런데 머리는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다. 얄미울 정도로 깔끔하게 넘긴 채로 단단히 고정된 머리카락. 옷가지를 멀끔히 하고 나온 여상은 그 희한한 부조화 앞에서 눈을 끔뻑였다.
“안에서 머리 세팅하려면 오래 걸리잖아요.”
그러면서 제 머리를 다시 한 번 고정하듯, 혹은 잘난 체 하듯 쓸어넘겼다. 우영은 여상을 앞질러 나갔다. 어슬렁대는 걸음걸이는 여전했다. 이대로 혼자 꽁무늬를 뺄 것 같이 혼자 나가고서는, 이따금 여상이 잘 따라오나 뒤를 돌아보았다. 여상은 이따금 우영과 눈이 마주칠 때면, 제 주먹을 꼬옥 쥐고는 땅을 보았다. 누구의 입에서 튀어나온지도 모르겠는 껌들이 아스팔트 바닥에 시커멓게 들러붙은 채 굳어있었다.
참 이상한 동네다. 술집과 나이트가 있는데 학교가 멀지 않아 문구점이 있다. 천장에 주렁주렁 걸린 플라스틱 훌라후프 아래에서 복사기가 바지런히 돌아갔다. 여상은 벽에 붙은 천 원짜리 아이돌 포스터를 보며 우영의 말을 엿들었다. 말재간이 타고났다. 사람을 들들 볶아내 흑백을 뽑을 가격으로 컬러 사진을 뽑았다. 여상이 시간을 드나든다면 우영은 사람 마음에 드나든다. 여상은 무수한 시공간에서 그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는 사람을 자처하지만 우영은, 다르다. 누구든 우영을 보면 그때 그 애, 하고 떠올릴 것이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음성을, 음성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얼굴을. 여덟 번의 만남. 사실 처음 단 한 번의 만남으로도 여상은 우영을 기억하고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여상은 확신했다.
“가시죠, 사장님.”
“사장님이요?”
“돈 나눠주면 다 사장님이지.”
인쇄된 종이가 두툼히 쌓였다. 우영이 찍은 개의 사진이 정중앙에 떡 박혀있었다. 사진을 사진으로 찍은 셈이니 영 흐릿하지만 그 흉흉함은 어디 가지 않았다. 찾을시 사례금 드림. 그 문구 아래에 적힌 번호는 어째서인지 여상의 번호가 아닌 우영의 번호다. 여상이 이유를 물으니 우영은 빤하게 능청을 떨었다. 어른이 찾으면 나이트 놀러오라고 해야지. 사장님, 이게 틈새시장이라는 거에요. 여상이 서울 깍쟁이라면 우영은 오션 나이트 깍쟁이다. 입을 열면 얄궂은 말만 튀어나오는데 딱히 흠을 잡을 곳이 없다. 여상이 답하지 못하고 어버버거리는 사이, 우영은 눈썰미도 좋게 청테이프 하나까지 같이 집어 왔다. 그리고는 쌩하니 앞서 나갔다. 집에서 챙겨나왔는지 주머니에 덜렁 홀로 들어가있는 가위 손잡이가 보였다. 여상은 우영의 뒤를 졸졸 좇으며 골목을 눈에 담았다. 길이 넓어지나 싶더니 오르막이 나왔다. 여상은 저도 모르는 새 속도를 줄였다. 이것도 여유라면 여유일 테다. 여태 바삐 오가느라 이 골목을 눈여겨 본 적이 있던가. 빨간 벽돌 다세대 연립 주택. 스티커로 만들어진 대출 전단이 덕지덕지 붙은 전봇대. 어지러이 널린 전깃줄과 그 위에 앉은 참새들. 주택가와 영 어우러지지 않게 위치한 고깃집들. 그 사이로 물에 술 탄 듯 녹아드는 우영의 뒷모습.
마지막. 정말 마지막이다. 여상은 아쉬움 같은 단어는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다. 가능성은 희박하다만 혹여나 여상의 상사가 또다시 기회를 준다면. 그렇다면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래서 여덟 번의 만남이 아홉 번을 채운다면. 그러나 여상은 다시 오지 않을 작정이다. 끈기는 상상 이상의 에너지를 요한다. 남들의 몇 배나 될 체력을 들이고 수근거림을 감내하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여상은 순간 이 거리가 징글징글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우영이 뒤돌아봤다.
“사장님. 나 있다가 출근해야 되거든?”
그 말에 여상은 쭐래쭐래 달려갔다. 오르막에 정강이가 당겼다.
이인 일조의 작업. 우영이 전단을 붙이기 좋은 곳을 물색한다. 그리고 그 위에 전단을 댄다. 여상은 테이프를 알맞게 뜯어 전단을 붙인다. 그리고 때이른 눈이나 차가운 초겨울 비에 젖지 않기를 기도한다. 계획은 만만했으나 여상의 손이 굼뜬게 흠이었다. 연구실에 있을 때에도 테이프와 씨름한 적은 없었는데. 지문에 철썩 붙어 떨어지지 않는 테이프는 떼어내는 손가락에 들러붙었다. 그러면 그 손가락을 또 떼고, 그러자니 다른 손가락이 붙고……. 성근 작업을 보다 못한 우영이 테이프를 휙 앗아갔다. 아야, 상투적인 소리가 느리게 튀어나왔다. 우영은 그 사이 척척 손을 움직였다. 테이프를 죽 늘려 여상에게 도로 쥐여주고는 가위를 꺼냈다. 테이프가 석둑 잘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여상은 슬그머니 잘린 테이프를 내밀었다. 우영은 그걸 받아가며 투덜거렸다.
“사장님. 저 꼴랑 두 시간 뒤에 호동이 되어야 한다니까요.”
“테이프 잘 붙어요?”
“혹시 민망하면 말 돌리는 타입?”
“와아, 잘 붙는다.”
“그런 타입이시네.”
골목마다 듬성듬성 전단이 붙었다. 뒤늦게 명당 같은 곳을 발견했는데, 그때는 전단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우영은 부산스레 굴었다. 사장님 아까 붙인거 떼와야 돼! 닦달하는 통에 여상이 내리막을 삐뚤빼뚤 달려 내려갔다. 그러는 사이 우영은 여상을 앞질러 내려갔다. 우영이 공들여 넘긴 머리는 한 가닥이 삐져나와 달랑거렸다. 자꾸 뒷모습만 보는 것 같아. 까치 꼬리깃을 닮은 것을 지켜보며, 여상은 그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며 위안 삼았다.
정말 안 놀다가요? 진짜 안 들어가? 우영은 제 출근 시간이 코앞에 닥쳐올 때까지 치근거렸다. 여상은 그걸 끈질기게 마다하고는 뒤돌았다. 등 뒤에서 우영이 제 몫의 테이블을 잡아주겠다고 소리쳤다. 우영은 그렇게도 열심히 살았다. 여상의 동료들에게 여상이 열심히 사느냐 묻는다면, 아마 다들 그렇다며 긍정할테다. 초끈합금을 만질 때부터 소득 없는 한 해를 보낼 때까지. 지지부진할지언정 근무태만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쉬지 않고 달려왔음은 같음에도, 여상은 우영이 저와는 영 딴판이라고 여겼다. 다른 세계에 사는 것처럼. 그 이유는 역시 우영이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사람일 것이다. 강호동으로, 정우영으로, 어딘가에 사는 싹싹한 청년으로도, 불특정다수에게, 그리고 여상에게. 걷다 보니 익숙한 집이 나왔다. 콘크리트 마당이 딸린 주택. 문제의 그 아들이 사는 곳이다. 한창 저녁을 먹을 시간인데, 담장 너머로 어린 아이가―아마 그 집 아들일 것이다―빽빽 떼를 쓰는 소리가 들렸다. 여상은 제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우영은 없고 저 멀리 전단이 듬성듬성 붙어있었다. 개를 찾는다.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오지 않는다.
어디로 가서 오지 않을까?
여상은 저를 끈끈하게 둘러싼 우울을 못이겨 침대 위로 쓰러졌다. 미래의 드라마에서처럼 술을 마시고 사치를 하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분노와 설움 같은 모난 감정들을 난사하고 싶었다. 그러다가도 정말 그게 도움이 될까 싶어 결국 작은 욕조에 물을 받았다. 그 사이 영웅본색이 담긴 테이프를 되감았다. 치르르르르, 탁. 기계는 멈추고 물은 넘쳤다. 여상은 짐짝처럼 방 한가운데에 가만히 서있다.
간밤 여상은 꿈을 꾸었다. 상어가 되어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꿈이었다. 상어는 부레가 없어 죽지 않기 위해서는 자면서도 헤엄쳐야 한다, 여상은 그 말이 거짓임을 앎에도 끊임없이 움직였다. 아마 잠들기 직전까지, 물이 차게 식도록 욕조에 몸을 담근 덕에 바다로 왔을지 모른다. 물살이 뺨을 스쳤다. 지근거리에 아무도 없는 듯 전기장을 받아들이는 감각은 작동하지 않았다. 상어가 된 소감. 소감보다는 비로소 되었기에 자문자답할 수 있는 것. 이곳은 나의 집일까? 여상은 도통 알 수 없었다. 무언가든 알 수 있을 때까지 움직였다. 빛이 도달하지 않는 차고 깊은 수중에서 녹빛으로 물든 아열대의 연안까지.
핸드폰 기본 내장 벨소리 중 여상이 유일하게 알고있던 호두까기인형. 별안간 그게 울려퍼졌다. 여상은 삽시간에 바다에서 뭍으로 끌어올려졌다. 이불도 제대로 덮지 않고 자고 있던 것은 둘째 치고. 개가 반가운 사람을 보고 튀어나가는 것처럼 몸을 일으켰다. 부주의하게 덮개를 연 뒤 귀를 답싹 붙였다. 여보세요?
“주인님. 쇤네 제보를 받았습니다요.”
“……그 말투 너무 이상해요.”
“그래요?”
여상이 답하지 않았다. 우영이 보여준 만큼의 재치를 담은 대답을 고민하느라였는데. 우영은 도무지 정적을 모른다는 듯 운을 띄웠다. 말이 가로막힌 여상은 잠자코 우영의 음성을 들었다. 웬 꼬맹이 하나가 전화를 하지 뭐에요? 자기가 어제 저녁에 심부름 갔다가 봤대. 엄마가 시킨 대로 두부랑 파랑 뭐 이것저것 사서 집에 가는 길에. 럭키인지 해피인지 걔가 몰골은 꾀죄죄해져서, 골목 안쪽에서 아르르대길래 무서워서 도망쳤다 했나. 그래도 이 근방에 돌아다니는걸 확인은 했으니 다행인데, 걔가 뭐라는지 알아요? 자기한테 돈 달래. 쬐끄만게 어디서 돈 밝히는걸 배워왔대. 우영이 비죽이는 사이, 여상은 협탁 위 자명종을 흘끔댔다. 지금 시간은 오후 한 시. 우영이 한참 자고 있을 즈음이다. 잠에 푹 절여져 꺼끌한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고작 개 하나로 이렇게 많은 일이 달라지다니. 여상은 그제야 제 일을 실감했다. 사소한 선택으로 인간의 분기가 무수히 갈리다니.
“전화 받고 깬거에요?”
“그렇죠, 뭐. 다시 자기는 글렀네.”
“아아…….”
“사장님.”
그럴 때에는 칭찬 해주시는 겁니다. 우영이 으름장 놓듯 말했다. 여상은 그 말에 우영 못지 않도록 잠이 달아나서,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꿈뻑거렸다. 멍하니 벌어진 입을 벙긋대다가 겨우 황망한 듯이,
“자, 잘 하셨어요……?”
“나한테 물어보는 거에요?”
에엥과 으엑 사이. 우영은 해괴한 소리를 내며 집요하게 추궁했다. 칭찬 한 번 안 해보고 살았나, 사장님 말하는 것도 완전 서울 깍쟁이 같던데 어디 귀한 댁 도련님이에요? 귀가 따갑도록 들러붙었다. 여상은 혼란한 와중에 웃음이 샜다. 그러다가도 모든 것을 외면하고 싶었다. 바늘 옆에 선 풍선 같았다. 공부를 하고 업무를 배우며 홀로 사는 방법을 익혀도 사람을 대하는 것은 늘 어렵다. 그래서 이렇게. 무자비하도록 마음이 들쑤셔지면 펑 터질 것 같았다. 살아남고자 꽁무늬를 뺐다. 사실 누군가가 곁에 있는 것은 꽤나 좋은 일임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우영은 제게 바투 붙어왔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쩌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이러하리라. 그렇게 생각하면 손쉽게 싱숭생숭해졌다.
“잘했, 잘했어요.”
물론 여상은 이 모든 문제가 제게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서툴기만 해서. 받는만큼 주지 못할까봐. 그러다 상처입힐까봐. 굳이 스스로를 외로이 만드는 변명을 하는게 아닌가. 여상은 이미 알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파고드는게 뭐가 나빠. 쓸쓸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게 뭐가 나빠. 사람에게 살갑게 구는게 뭐가 나쁘지. 그렇게 스스로를 때리고 있자면 금방 지치고 말았다. 여상에게 이 세상은 너무 어렵다. 그러다 보면 여상은 자신을 등지고, 기꺼이 우영의 편에 서게 되었다. 밀물처럼 밀려드는 너를 매번 놀라워 해. 나를 죄다 흔들어놓는 너를 한결 같이 동경해.
“……고마워요.”
“잘 하시네. 사장님 나이스 샷.”
첫 번째로 만난 우영에게는 사과하는 법을 배웠다. 제멋대로인 그 집 아들의 토라짐을 풀어줄 비법을 세 시간동안이나 들었다. 두 번째로 만난 우영에게는 싫증내는 법을 배웠다. 그건 곧바로 부담스러우리만치 맥주 한 잔을 요구하는 우영에게 써먹었다. 세 번째로 만난 우영에게는 따져 묻는 법을 배웠다. 배웠나. 여상은 우영이 하는 것의 일 할도 따라잡을 수 없으니 배웠다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로 만난 우영에게는 어디 가서 호락호락하게 보이지 않는 법을 배웠다. 여상은 입매를 아래로, 눈매는 세모나게, 그런식으로 인상을 일그러트렸고 족족 우스꽝스러웠다. 우영은 여상이에게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제가 괜한 것을 가르친 것 같다며 머리를 싸매고 사과했다.
“그런데 내가 사장님 이름을 모르네.”
여섯 번째 우영에게는 떳떳하게 제 이름을 말하는 법을 배웠다. 여상은 의아해했다. 이름 석 자를 말할 기회가 여태 얼마나 많았는데. 그러나 우영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여상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그 새카만 홍채에는 ‘오션’의 얼룩덜룩한 빛이 묻었다. 바보야, 너를 소개하는게 아니라 너를 들이밀어. 친구끼리는 그러는 거야. 우영은 여상이 도통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나를 들이민다는게 뭐야? 우리 고작 며칠 봤는데 친구야? 질문이 장마철의 개울처럼 불어났으나, 여상은 우영에게 든든히 붙들려 제 이름을 반복해 말했다. 여상은 솔직히,
“강여상……인데요.”
“와. 우리 같은 강씨다, 그쵸?”
우영이 싫다. 아주 아주 싫다. 여상은 우영 같은 부류의 인간이 끔찍하기만 하다. 놀랍기는 개뿔. 동경은 얼어죽을 동경. 문 너머에 틀어박힌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제 맘대로 난도질을 해놓고는 무단으로 틈입하는 악질이 틀림없다. 여상은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았다. 그 집 아들이 그의 개 럭키에게 그러하듯. 누군가를 긴밀히 여기는 것.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에 편안을 찾아내는 것. 방법을 몰라 손을 놓고 있는데 우당탕 들이닥치면 어떻게 곱게 보이겠어? 그러고는 서툰 저를 마음껏 얕봤다. 여상이 어린 애라도 되는 양 제가 살며 터득해온 것들을 들이밀었다. 난 그렇게 자라지 않아. 자라날 필요 없어. 너와는 상종도 하지 않을거야. 분명 그렇게 다짐했던 적도 있건만.
“내내 사장님이라고 저장해 둘 뻔 했네.”
이 우주의 유일한 필연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것 뿐이다. 여상은 이 대전제를 꽤나 예전에 배워두어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모든 일들은 우연인 셈이다. 이렇게 우영의 전화에 눈을 뜬 것도 우연. 우영이 제 별명을 주윤발로 하고 싶었던 것도 우연. 주윤발이 영웅본색에 출연한 것도 우연. 그러나 수많은 우연이 반복되다 보면 으레 착각하기 마련이다. 이건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는 일인가봐. 여상은 매번 우영을 만났으니, 어쩌면. 사실 그렇지 않음을 잘 알고 있는데도 혹시라도. 그렇게 물렁한 상상을 했다. 우영은 매번 여상에게 축복인지 재앙인지 애매한 몰골로 달려든다. 그러다 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내가 얘를 어떻게 미워하지?
“있다가 나와요.”
“왜, 왜요?”
“개 찾아야죠.”
“아. 아아, 개. 맞다, 개…….”
그리고 지금. 여덟 번째 우영에게는 아무 것도 배우고 싶지 않다. 여상은 황망히 옷걸이를 뒤적거렸다. 어제와 겹치지 않는 말끔한, 우영이 입었던 것처럼 편한 옷이 필요했다. 교집합이 적었다.
여상은 조금 숨고 싶어졌다.
“왜요. 뭐.”
“그냥…….”
“그냥 뭐요.”
“강아지 찾을 때 입는 옷은 아닌 것 같아서…….”
명찰만 달면 오션 관광 나이트의 아기 삐끼 강호동이 될 지경이다. 여상은 부담스러움에 난색을 표했다. 어제는 잘만 편한 옷을 입고 동네 마실 나오듯 했으면서. 우영은 약이 올랐는지 더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내 옷이 뭐가 어때서. 나한테는 이게 제복이거든요? 사장님 삐끼 처음 봐?! 우영이 소리치며 다가왔다. 여상은 게걸음으로 슬금슬금 피했다. 상복처럼 검다고 하기에는 미묘한 광택이 도는 셔츠와 바지는 하나 같이 몸에 딱 맞았다. 신고 있는 구두도 반딱거렸다. 아무리 봐도 기능성은 아니다. 여상이 쭈삣대며 길의 가장자리로 걷고 있자니, 우영은 또 빽 하니 소리를 질렀다. 강사장님 길 알아요? 거기 아니거든!
개가 발견되었다는 골목은 비좁고 어두웠다. 빛이 잘 들지 않는 귀퉁이는 오션 관광 나이트 근처 해장국집을 향해 꺾여있었다. 고양이들이 요기를 하러 들락거리는 곳이니, 별다른 장애물이 없다면 강아지도 쉬이 드나들 수 있을 것이다. 여상은 골목 입구에 몸을 반쯤 걸치고 휘휘 둘러보았다. 반면 우영은 몇 발짝 뒤에 서서 딴청이나 피웠다. 골목은 너저분해서 조금만 옷감이 스쳐도 온갖 것이 다 묻을게 빤했다. 그러게 왜 벌써부터 출근 준비를 해가지고. 여상은 비죽대다가 금새 제 입을 집어넣었다. 우영은 지금 선의로 여상을 돕고 있을 것이다. 타인의 선한 마음씨를 이런 식으로 무시하면 안 되지. 여상은 몸을 구겨 골목 안으로 들어가다 시피 했다. 우영은 그 뒤에서 짝다리나 짚고 있다가, 적잖게 멋쩍은 듯 틱틱거렸다.
“거, 그 개. 지 이름 부르면 오긴 해요?”
“……몰라요.”
“그것도 모르면 어떡합니까. 그럼 우선 불러 봐야 안다는거네?”
“그렇죠, 아마?”
“해피야. 해피야아.”
“럭키인데요?”
잠깐 정적. 그리고 우영은 순한 목소리로 럭키야, 하고 달래듯 외쳤다. 중간에 혀 차는 소리도 섞어가며 부르는 폼이 제법 개를 다뤄본 사람 같았다. 우영이 개를 길렀던가. 여상은 그것까지는 들어본 적이 없다. 세 번째로 만난 우영에게 라면을 얻어먹었을 때. 일곱 번째로 만난 우영과 나이트 영업이 끝나는 아침에 만나 캔커피를 뽑아 마셨을 때. 그 때 우영은 묻지도 않은 제 이야기를 술술 했다. 그때 여상이 얻어낸―이 말에는 어폐가 있는데, 여상은 구태여 우영을 알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정보란 이렇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늦둥이 동생이 있다. 돈을 모아 스쿠터를 사고 싶다. 더 여유가 되면 대학에 복학하고 싶다. 제 윗 기수―아마 상사를 뜻하는 것 같다―에는 짱구와 피카츄가 있다. 자신이 사는 옥탑방은 부엌이 바깥에 나와있어 더 추워지면 설거지를 못한다. 그래도 난방은 잘 된다. 외풍도 안 들게끔 잘 해뒀다. 놀러와라. 언제든지. 네 집이라 생각하고서. 그리고 여상은 우영의 집에 가지 않았다. 라면을 얻어 먹은 그 최초의 방문이 마지막이다.
아우우우우. 럭키야아. 우영은 허리를 구부린 채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정돈해 입은 셔츠는 어느새 빼꼼 튀어나와 사각사각 구겨졌다. 우영은 참 열심이었다. 그래서 여상도 괜스레 희한한 가성을 내어 럭키야아, 하고 불러보았다. 둘의 목소리가 이리저리 아우러지다 흐트러졌다. 길목 어딘가에서 예의 그 ‘사랑스러워’가 튀어나왔다. 여상에게는 다소 경박한 멜로디이건만 이 시간대에서는 공전의 히트곡이라니. 우영과 여상 사이에 걸친 십육 년. 나는 사실 아저씨. 너는 청년. 여상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소름이 쭉 끼쳤다. 여상이 우영을 자주 종잡을 수 없는 이유가 세대 차이 때문인 건가. 여상은 엉뚱한 생각에 휩쓸려 입을 떡하니 벌렸다. 그 사이 우영은 제 허리를 펴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런데 강사장님.”
“에?”
“강사장님도 저 노래 좋아하시나?”
“저는 딱히…….”
“헐. 난 이거 완전 애창곡인데.”
나 핸드폰 벨소리도 이거거든요. 우영이 부산스레 움직였다. 손끝이 정수리와 어깨에 닿았다가 무릎으로 가는 시늉을 했다. 여상은 꿈틀대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소리 없이 웃다가, 아주 작은 소리를 용케 찾아냈다. 폭주하듯 뽑히는 경쾌한 반주 사이로 작은 짐승이 낑낑대는 소리. 여상이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우영은 제 재롱에도 돌아오는 반응이 없자 곧장 시시하다는 얼굴을 했다. 분명 딴죽을 걸려고 입을 벌렸을텐데, 우영의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가 없다. 심상치 않은 여상의 표정을 보아하니 무언가 건진 것 같은데. 그러나 우영은 아무 낌새도 느끼지 못해, 살금살금 걸어가는 여상의 옆에 바짝 붙기만 했다.
“럭키?”
여상이 되물었으나 여전히 우영의 귀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도리어 노래에 몸을 들썩이지 못하는게 고문 같았다. 여상은 개미굴 같은 골목 사이사이를 구렁이처럼 지났다. 럭키. 럭키. 착하지. 우영은 여상이 어느 골목을 염두에 둔지도 모른 채 속닥거렸다. 그 사이 여상은 조심히 멈춰 섰다. 우영이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검지로 골목 사이를 가리켰다. 여상은 잠자코 끄덕였다. 둘이 잔뜩 움츠러든 채 어깨를 맞부딪쳐서나 드나들만 했다. 개는 분명 저 골목의 어두컴컴한 곳에 있다. 우영이 제 손을 들어 기묘한 수신호를 그렸다. 브이를 그려 자신과 여상을 동시에 가르켰다. 그리고 두 주먹을 병렬로 나열해 앞으로 쭉 뻗었다. 그리고는 왁, 놀래키듯 손을 활짝 펴고는 다시 그러쥐었다. 이보다 더 건성으로 작전을 짤 수 있을까. 여상은 주먹구구가 따로 없는 계획에 난색을 띄웠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결국 둘은 오래된 흑백 무성 코미디 영화의 배우들처럼, 홀쭉해진 채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어떻게 하면 개를 자극시키지 않고 다가설 수 있을지 몰라 무작정 서행했다.
너무 가까워. 가까워서 불편해. 여덟 번째로 우영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줄어든 거리. 여상이 제 손을 꿈지럭댔다. 이제 몸뚱이는 우영의 어깨와 좁은 벽 사이에 가둬졌다. 이 거리감을 못 이겨 전진으로든 후진으로든 도망칠 수도 없다. 어깨와 팔뚝. 가끔 스치고 지나는 팔꿈치. 여상은 우영의 체온을 실감했다. 온기보다는 열기에 가까웠다. 골목에는 한풍이 나뒹굴고 붕어빵 노점이 보이는데. 춥게 입었나 싶더니 이런 이유에서였나. 여상은 어쩐지 그 열이 저에게도 옮는 기분이었다. 여상은 눈을 질끈 감았다. 희한한 감정이었다. 축축하고, 거북하고, 낯간지럽고. 거기까지 생각한 여상이 눈을 반짝 떴다. 어둠 속에서 개의 동공이 번뜩 빛났다. 두 눈 아래에는 흰 점선이 보였다. 점선?
“맞네, 맞아.”
“뭐가요?”
“저거 무는 개야!”
저거, 라는 호칭에 반응했다면 럭키는 정말 똑똑한 개가 아닐 수 없다. 개는 조그맣고 날카로운 이를 양껏 자랑한 뒤, 사진으로 보았던 것보다 더 흉포한 생김새로 뛰어올랐다. 저 조그마한게 얼마나 민첩한지 손을 쓸 틈도 없었다. 광분해서 달려드는 개. 애석하게도 개와 둘 사이의 거리는 널찍하지 못했다. 어떡해요? 어떡하냐고! 우영과 여상이 혼비백산한 채로 버둥거렸다. 도망을 가느냐 들이받느냐. 이도 저도 선택하지 못한 사이 어깨와 벽이 마구잡이로 부대꼈다. 아차 하는 사이 균형을 잃었다. 와중에 넘어지지 않겠다고 서로 팔로 부여 잡고 밀치느라 난잡한 꼴이 됐다. 그리고는 사이 좋게 쿵. 엉덩이로 착지했다. 그 사이 개는 단숨에 거리를 좁혀왔다. 둘 중 누구를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우영과 여상의 낯이 허옇게 질렸다.
뒤이은 비명은 일 인분이다. 아악, 씨발! 쩌렁쩌렁한 소리에 길목을 오가던 사람들이 한 번 즈음 골목 안을 흘끗 쳐다보고는 그새 시선을 거두었다. 우영은 못 볼 꼴을 다 봤다는 듯 아연한 얼굴로 팔을 흔들었다. 놔라, 안 놔?! 사람은 꽥꽥거렸고 개는 눈을 뒤집어 깔 듯 굴었다. 여상은 팔딱대는 개의 옆구리를 부여잡고 무작정 당겼다. 우영은 연신 팔을 뒤틀다가, 개와 함께 딸려나왔다. 팔뚝은 조그만 개가 물었다 한들 최선을 다해 꽉 물린 채고, 개의 몸은 당겨지고, 물린 팔뚝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아 버둥거리고. 아수라장이었다. 옷에 무엇이 묻어나던 이제 와서 아무 소용도 없지. 우영은 귀청이 떨어질 듯 소리를 질렀다. 골목이 좁아 그 소리가 쩡쩡 울렸다. 여상은 쉽게도 귀가 피로해졌다. 우영을 꽉 물고 있으니 도망가지는 않을테니, 개가 제 턱에 힘을 빼기만을 유도하면 됐다. 여상은 아예 개의 몸통을 꾹 끌어안았다.
“이거 미친 개 아니야, 진짜!”
개의 등이 발발대며 꿈틀거렸다. 여상은 제 볼을 개의 목덜미 뒤에 딱 붙였다. 남은 손으로는 개의 턱 주변을 엉성하게 주물렀다. 으아아악!! 우영의 비명이 뒤집어지자 드디어. 여상은 여전히 개를 끌어안은 채로, 뒤로 넘어갔다. 더러운 바닥에 뒷통수가 부딪쳤다. 저릿저릿 아픈 와중에도 어찌 그리 요동을 치는지. 여상이 질겁한 채로 개를 살폈다. 이제 주인에게 데려다 주면 된다. 미래에 변화가 생겼다면 호텔에 비치해둔 전화기로 연락이 올 것이다. 연락이 오지 않으면 여상이 먼저 수화기를 들어 실패를 보고한다. 그 뒤 여상은 짐을 싸면 된다. 체크아웃을 하고 본부로 이동해 과거로 돌아가면.
개는 단단한 발로 여상의 가슴팍을 마구 밀쳐내더니, 겨우 생긴 틈 사이로 빠져나갔다. 분명 꾹 끌어안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상이 다급하게 우영을 불렀다. 이빨 맛을 본 우영은 달려드는 개 앞에서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개는 우영에게 달겨들 듯 하다가, 옆구리로 파고들어 쌩하니 달려나갔다. 닭장 밖으로 뛰쳐나오는 닭처럼 부산스러운 움직임. 발발거리며 사라진 작은 맹수와 웅성거리는 행인들. 음영진 우영의 얼굴. 손톱보다 더 작지만 이빨은 이빨인지라 상해버린 셔츠. 잇자국에 송글송글 맺힌 핏물. 우영의 눈코입이 심상치 않게 꾸물거렸다. 여상은 텅 비어버린 제 손을 귓전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야무지게 틀어막았다. 그 즉시 우영이 악다구니를 썼다.
실컷 고성을 토한 우영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대로 강호동이 되기는 글렀다. 여상은 제 귓전에서 슬그마니 손을 떼었다. 우영의 옆으로 붙어 그 팔을 주욱 잡아당겼다. 셔츠를 걷고 환부를 들여다 보았다. 저 개 예방 접종은 맞았을까, 같은 소리를 했다가는 우영이 펄쩍펄쩍 뛸 것 같으니 입은 꼭 다물었다. 핏물 덕에 반들한 상처와 식은땀 덕에 살짝 미끈거리는 피부. 여상은 응급처치 따위는 할 줄 모르고 고통을 달래는 방법도 몰랐다. 그저 우영의 팔뚝을 쥔 채 허둥지둥 하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 우영은 정신 없는 여상의 머리꼭지를 바라보다가 미운 소리를 얹었다. 그걸 놓치면 어떡해!
여상은 더듬더듬 말하기 시작했다. 미안. 미안해요. 내가 실수했어. 죄송해요. 언젠가 우영에게 배운대로 읊었다. 우영은 씩씩대며 분을 삭이더니 대뜸,
“이럴 때에는 사과 하는거 아니에요.”
라고 말했다. 언제는 사과하는 방법을 알려준 주제에. 여상은 묻고 싶었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여상은 군말 없이 우영의 뒤를 따랐다. 문을 연 병원이 없어 멀리까지 걸었다. 여상은 진료실 바깥 길쭉한 벤치에 앉아 침울해 했다. 우영은 상처를 소독하는 내내 창피하지도 않은지 엄살을 피워댔다. 그 사이 우영의 모토로라 레이저는 쉴 틈 없이 울렸다. ‘사랑스러워’의 후렴구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진료실. 우영은 전화를 받고는 윤발이 형님, 하고 연신 종알종알거렸다. 진짜 개한테 팔을 물어뜯겼다니까요? 귀신 산발 거지꼴인데 내가 출근을 어떻게 해. 내가 큰 맘 먹고 사진 보내준다. 그리고는 잠잠했다. 여상은 팔에 드레싱을 한 우영이 나오기까지 속으로 팔십을 세었다.
쉽지야 않겠다만 개는 다시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우영은 하루를 공쳤다. 여상은 본능적으로 우영과의 사이를 벌렸다. 걸리적거리지 않을 최적의 거리를 연거푸 계산했다. 저 멀리 오션 관광 나이트가 번쩍번쩍 빛났다. 각양각색으로 차려입은 사람의 떼가 그 앞에 쥐떼처럼 모여있었다. 우영을 제외한 호객꾼들이 입구를 향해 손짓하며 아우성쳤다. 우영은 실눈을 뜨고 군상을 노려보았다. 여상이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아, 여기. 우영의 옥탑방 근처다. 아니나 다를까. 우영이 제 검지를 들고는 어중간한 하늘을 가리켰다. 우리집 저기거든요?
“밥이나 먹고 가요.”
“싫어요.”
“좀 씻고 가기라도 하던가.”
“안돼요.”
“환자 버려두고 가겠다고요?”
여상은 언제나 그렇듯 거절했다. 그리고 우영은 간사한 수를 꺼냈다. 우영은 단 한 번도 ‘내가 너 때문에 다쳤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제 발 저린 여상은 그 말에 끙끙 앓았다.
“환자니까 푹 쉬어야죠.”
여상이 개를 놓친 것은 우영과 어깨가 맞닿았기 때문이다. 여상은 수시로 제 처지를 파악해야만 했다. 아무 것도 두고 가지 않는 사람. 홀연히 사라져 잊혀지는 사람. 번호를 교환하고 문자와 전화를 주고받는 것부터가 글러먹었다. 우영의 집에 간 기억을 품고 살아가기 싫다. 잊을 자신이 없어서다. 작지만 살뜰한 방의 미적지근한 바닥이나 욕실에서 나는 옅은 곰팡이 냄새 같은 것. 맵고 짠 라면과 이전 세입자가 남기고 간 야광별 스티커의 광도 따위. 멀찍이 있음에도 느껴지는 우영의 자기장. 여상은 이 풍족하지만은 않은 풍경이 아늑했다. 고작 한 번 다녀왔을 뿐임에도 이렇게 선명한데 두 번은 못하지. 분명 과거로 돌아가 수시로 그리워할 것이다. 과거도 아니고 미래를 반추하기는 싫었다.
여상은 우영을 두고 가고 싶지 않다.
정을 붙이지 않는다는 것은 전제부터 틀려먹었다. 매번 미래로 올 때마다 같은 사람을 만나는데 어떻게 정이 들지 않을 수가 있겠어. 여상은 제 마음을 죽을 때까지 설명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어떤 용어와 언어를 들이부어도 덩어리지지 않는다. 우영 옆에 있으면 여상은 물처럼 녹아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비처럼. 강이나 바다처럼. 아니면 수도꼭지를 열면 쏟아지는 것처럼. 누군가의 몸에 깃들 수 있는 존재. 여전히 능청 떠는 데에는 영 젬병이고 테이프 하나 제대로 못 떼는 성근 사람이지만.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여상은 그렇게 판단했다. 명백한 욕심이다. 그래서 우영을 저 멀리 밀어냈다.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세상이 너무나도 많다.
“와도 된다니까?”
“돌아갈래요.”
“나이트도 안 오고. 집도 싫고.”
“그런 곳 싫어요. 저 원래 남의 집에 안 가요.”
“사장님이랑 내가 남이야?”
“이름으로 불러주지도 않으면서.”
이건 실수. 여상이 토끼눈을 떴다. 그간 여상이 보아온 우영은 집요한 사람이다. 개가 둘 중 우영을 문 것은 아무래도 동족을 알아봤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입 안 그득하게 꼬투리를 물고 늘어지는게 개가 아니면 뭐야.
“여상아.”
“……내가,”
“여상이가 뭐?”
“내, 내가 더 형인 것 같은데.”
“그럼 민증 까봐.”
지갑이 열렸다. 여상의 위조된 신분증에는 우영의 것과 같은 생년이 적혀있다. 우영이 신이 나서 떠벌거렸다. 여상은 입술을 꼭 깨물고 쑥쓰러움을 감내했다. 여상은 옥탑으로 향하는 계단의 초석을 밟고 서있었다.
우영은 욕실에서 온수와 씨름했고, 여상은 열기 냉기 습기에 볼록 튀어나온 장판 정중앙을 보고 있었다. 그 위에는 우영의 분홍색 모토로라가 놓여있다. 여상은 제 주머니를 더듬거려 제 라임색 모토로라를 꺼냈다. 앗뜨거 앗차거. 중간이 없는 혼잣말 사이에서 여상은 숨을 죽였다. 전혀 떳떳하지 못한 자세로 벨소리 다운로드 페이지에 접속했다. 이것저것 버튼을 눌렀지만 조작이 마냥 어렵다. 결국 ‘사랑스러워’를 어떻게 내려받는지 모른 채, 라임색 덮개가 텁 덮였다.
이제 정말 욕심부리면 안 돼. 모든 것이 끝난 뒤 아쉬워하지 않는 방법은, 전부를 겪어보는게 아니야.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아서 특별하게 여길 기회조차 주지 않는거야. 여상은 찬찬히 합리화에 나섰다. 지난번 방문과 똑같이 행동하면 된다. 라면을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한 번 해봤으니 두 번은 문제도 아닐테다. 아마.
여상은 패키지가 다른 라면 봉투에도 놀라지 않았다. 면발을 깨작대며 집어올렸다가 상에 흘리기 부지기수였다. 우영은 중얼대며 바지런히 여상이 흘린 것을 닦고 치웠다. 우영은 식사가 끝나자마자 드러누웠다. 이건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살그머니 제 짐을 챙기던 여상이 우물쭈물댔다.
“이 시간에 노는거 오랜만이다.”
우영이 나직하게 말했다. 나 아는 누나가 빵집에서 빵 굽거든? 휴일에 절대 못 쉰대. 뼈가 부러져도 나가야 된대. 거기는 휴일이 제일 바쁘거든. 어린이날이랑 크리스마스 생각해봐. 다 케이크 사겠다고 몰려들지. 그래서 그런지 그 누나, 누구를 만나든 휴일에 못 쉬는 일은 절대 하지말라고 하고 다녔어. 휴일 없는 일도 하지 말고. 그래서 알겠다고 했단 말이야.
“근데 사람 일 모르는거더라.”
“…….”
“부처님 오신 날에도 안 쉬어, 나이트는. 대박이지? 사장님 사모님 겁나 와.”
“…….”
“밥 먹으니까 졸리다.”
꿈뻑. 꿈뻑. 천장을 향한 짝눈이 느리게 감기고 뜨였다. 방이 좁아 누운 몸으로 바닥이 꽉 찼다. 현관으로 가는 길이 막힌 셈이라, 여상은 가만히 앉아 우영이 잠들기를 기다렸다. 야광별은 예전에 보았던 모습 그대로 붙어있었다. 하현달과 별. 물고기와 토끼. 우주선. 그 사이 우영은 선잠에 빠졌다. 여상은 개에게 다가갈 때보다 더 조심히 걸었다.
쪼그려 앉은 채로 신발을 꿰어신는 것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우영은 와중에 입이 궁금한 듯 입맛을 다셨다. 여상은 문고리를 잡았다가 문득 서러워졌다. 대체 누가 나에게 이를 악 다물고 살라고 했지.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왜 이렇게 아득바득 사는 거지. 자기 부정으로 빚어진 사람처럼.
여상은 다시 방 안으로 몸을 돌렸다. 머지 않은 곳에 우영이 있었다. 입매는 슬쩍 벌어져있다. 여상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영을, 시간을 들여 살펴보았다. 마지막이라는 말도 순전 거짓말이었다. 다시 오고 싶었다. 오션 관광 나이트의 앞이라던지, 이 옥탑방이라던지, 2005년의 이 서울 변두리. 두고 떠나기가 두려운 모든 것이자 단 하나의 존재. 나는 너를 좋아해. 이것은 여상이 손 쓸 수 없는 일이다. 우영의 넓은 눈두덩 위로 먼지가 앉았다. 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받았다. 여상은 온갖 걱정을 뒤집어썼다. 우영의 상냥함은 나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닐 것이다. 우영은 이 방 안에 누구든 들일 수 있을 것이다. 누구와도 친구가 되고 누구에게도 친구를 자처할 것이다. 우영은 착한 사람이니까.
역시 오는게 아니었다. 지난 번에 만난 우영에게 그러했듯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굴어야 했어. 여상의 눈 주위는 울기 직전의 아이처럼 일그러졌다. 그리고 우영은 눈을 번쩍 떴다. 눕히면 눈을 감는 인형이 고장난 것처럼 순식간에.
히익. 기운 없는 비명을 지른 여상이 나동그라졌다. 현관에 빠듯하게 붙은 신발장이 등에 떠밀렸다. 신발장이 흔들리며 우영이 모아온 신발들이 우르르, 여상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난데 없이 신발 한 가운데에 있고, 몰래 훔쳐보던 우영과는 눈이 마주쳤고, 우영과 여상은 지나치게 가까웠다. 떨어진 신발들 중 하나에 정수리를 콕 찍혔는데 통각이 둔하기만 하다.
“야.”
“왜, 왜.”
“너 나 좋아하지?”
우영은 단숨에 여상을 꿰뚫어봤다. 여덟 번째 만에. 처음으로.
“솔직히 말해봐.”
“뭘?”
“너 내 앞에서 뻣뻣하게 구는거, 사실 나 좋아해서 그런거였지?”
“내가 언제.”
정말 내가 언제 그랬어. 여상은 이게 억울함인지, 발끈함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테이프를 못 떼서 고생하던 것? 칭찬을 어색해한 것? 어깨가 닿아 어물거리던 것? 그럴싸한 말 한 마디도 못하면서 뒤를 졸졸 쫓아다니다가 집에 들어오고는 몰래 훔쳐보던 것? 서투름과 멋쩍음이 혼재한 지난 태도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간 여상은 우영을 허투로 만난 것이 아닌지라,
“너 같은 사람보고 그러는 거랬어. 도끼병 환자, 왕자병 환자.”
“……말 잘 하네?”
“자기가 킹카인 줄 아는 애.”
“나는 나 좋다는 사람 눈만 봐도 알아.”
“재수없어.”
이건 순도 높은 진심. 여상은 비죽한 눈으로 우영을 흘겼다. 우영의 표정은……어렵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얼굴. 평온한 눈썹과 눈매. 언제 뻔뻔한 말이 튀어나올지 몰랐다. 여상은 우영이 어렵기만 하다.
“그럼 나 싫냐?”
“유치해.”
좋아하는게 아니면 싫어한다니 저 단순무식한 사고방식. 여상이 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우영은 여전히 대답을 종용했다. 나 싫냐고. 싫냐니까? 여상은 당장이라도 입을 열어 긍정해야만 하는데, 싫다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미쳤어. 현장 요원 실격이야. 나는 스파이 같은거 죽어도 못 해. 여상은 그 짧은 시간에 다시 연구부로 쫓겨나는 상상을 했다. 아니면 아예 실직자가 되거나.
“그럼 뽀뽀해봐.”
“……뭐?”
“좋은지 싫은지 판단하게 뽀뽀 해보라고.”
“요, 요즘 애들은 진짜,”
일곱 번째로 만난 우영에게는 키스하는 법을 배웠다.
파렴치해. 수치를 몰라. 여상은 우영의 기준으로 마냥 옛날 사람 같은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우영이 누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엉금엉금 후진하던 여상은 손에 걸린 신발 하나를 집어 우영에게 툭 던졌다. 어깨 근처를 맥없이 치고 떨어진 신발이 도르르 굴렀다. 솔직히 싫지 않았어. 사실은 좋았어. 정말 솔직히 말하면 생각보다 좋지는 않았던 것 같아. 여상은 지난 입맞춤을 떠올렸다. 우영이 돌발적으로 저지른 짓이다. 입술로 느껴지는 열이나 건조함. 고막이 울리도록 요동치던 심장. 자신도 모르는 사이 힘이 빠지던 어깨. 귀여워서 그랬어, 라는 씨알도 안 먹힐 저렴한 이유. 그리고 여상은 우영을 멋지게 밀쳐낸 뒤 이건 추행이라며 급급하게 자리를 떴다. 그 뒤로는 우영의 행동 반경 주위로 얼씬도 하지 않았다. 덩달아 임무 대상에게도 접근할 수 없었다. 과거로 돌아온 여상은 사흘 가량 머리를 쥐어짜내며 시말서를 썼다. 여상은 힘껏 웅크렸다. 벌벌 떨며 물었다.
“……우영아.”
“왜.”
“너 나 좋아해?”
“내가 먼저 물어봤어.”
우영은 성큼성큼 기어왔다. 여전히 주위에는 신발들이 굴러다녔다. 오늘 우영이 신었던 구두는 여상의 발뒤꿈치에 눌려있다. 여상은 속으로 제 소망을 되뇌였다. 자의식이 강한 가정이지만, 이래서는 누가 도끼병에 왕자병 환자인지 모르겠지만, 너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여기 마지막으로 왔는데. 성공하던 실패하던 꿈처럼 사라져버릴건데. 전화번호도 해지될거야. 나는 너를 오래도록 기억하겠지만 나는 너에게 그런 존재이고 싶지 않아. 나는 여행지에서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이 제일 이해가 안 가. 왜 금방 사라질 사람한테 목을 매. 심지어 너는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내가 언제 사라지는지. 그래도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안 될까. 우영아. 우영아. 그 사이 우영은 불쑥 다가왔다. 여상은 빛 한 줄기 들어올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비장하게 말했다.
“……나 너랑 같은거 달렸어.”
“알어, 너 목젖 튀어나온 것만 봐도.”
입술이 닿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천지가 뒤바뀔 듯 두려웠으나 우영과 여상과 신발들은 거꾸로 뒤집혀 낙하하지 않고 모두 제자리다. 소심하게 벌어진 입술 새로 한숨이 오갔다. 우영이 여상의 어깨를 붙들었다. 여상은 제가 이대로 굳어버릴 것만 같았다. 누가 이 세상에 초끈합금으로 만든 박스를 뒤집어 씌워놓았나. 그 짧은 사이 세상이 정지한다. 우영의 자기장과 체온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었다. 어디선가 개가 깽깽 짖었다. 새벽인가봐. 새벽에서 시간이 멈춰버렸나봐. 과거로도 미래로도 가지 않고 지금만이 진짜인가봐. 정체된 시간이 몸을 허문 듯, 붙잡힌 어깨에 힘이 풀렸다. 여상은 이제서야 온전히 우영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이에 개는…….
“무슨 놈의 개가 이렇게 짖어?”
온 동네를 뒤엎을 듯 짖었다. 쌓아올린 분위기가 도미노처럼 와르르 쓰러졌다. 여상은 입술이 떨어지고 나동그라졌다. 여태 두 번 했지. 세 번은 못 해. 사람이 고장나는 기분이야. 우영은 옥탑의 쪽창을 쾅 열어젖혔다. 그리고 고개를 쭉 빼내고 외쳤다. 개 단도리 좀 잘 합시다!! 여상은 여전히 신발더미에 주저앉아 그제야 눈을 떴다. 우영이 여상을 내려보고 있었다. 눈만 마주쳤는데도 귀가 확 달았다. 그럼에도 우영은 창 밖으로 머리와, 붕대를 감은 팔을 쭈욱 내밀고는 미동도 않았다.
“야, 여상아.”
저기 그 개 있다.
고기 탄내가 심하게 났다. 술은 오래 되었는지 넘기는 족족 쓰다. 여상은 겨우 허리만 세워 앉아있었다. 술잔과 함께 오가던 이들이 여상을 보고 한 마디씩 했다. 강사원 축하해. 여상씨 축하해요. 여상은 앵무새처럼 감사합니다, 를 반복했다. 내내 치켜올라가 있던 입꼬리가 저릿저릿했다. 여상이 출장을 떠난 뒤로 내내 죽상이었다던 황과장은 면전에서 욕을 들어도 허실허실할 듯 기뻐보였다. 여상은 마지못해 입을 움직였다. 고무 같은 돼지갈비를 씹고 퀴퀴한 소주를 삼켰다. 누구를 축하하는 자리인지 고역스럽기만 했다.
개는 정답이었다. 먼 미래의 골칫거리가 씻어낸 듯 사라졌다. 더이상 2005년으로 갈 이유가 없다.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일어나 여전히 서있으니, 아홉 번째로 선다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까. 보너스. 휴가. 이달의 우수 사원. 포상을 짐짝처럼 멘 여상이 비틀비틀 걸었다. 노련하게 나이든 모 여가수의 절절 끓는 사랑 노래가 흘러나왔다. ‘사랑스러워’는 없다. 이곳에서 김종국은 솔로는 커녕 그룹으로도 데뷔하기 전이다. 꾸역꾸역 도착한 집에서는 금속 냄새가 났다. 먼지와 곰팡이. 라면. 우르르 쏟아지던 신발. 야광별. 아무 것도 없다.
여상은 휴가 직전 미래로 전화를 걸었다. 곧 복귀한다는 사원이었다. 죄송하지만 야광별 스티커 하나 사다주실 수 있을까요? 여상의 물음에 사원은 흔쾌히 그러겠노라 답했다. 휴가를 하루 앞두고, 여상의 손에는 야광별 스티커가 떨어졌다. 물고기 모양으로 잘라진 것들이 있었다. 왜 하필 물고기일까. 은하수의 수가 물을 뜻해서 그런걸까. 여상은 반도 떠지지 않는 눈을 비볐다. 짙은 피로가 가시지 않았다.
집에 와 야광별 스티커를 야금야금 붙여나갔다. 붙이다보니 영 조잡해 몇몇의 위치를 바꾸려 했는데, 접착제가 얼마나 끈끈한지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벽지를 조금 찢고 나서야, 길쭉한 물고기 모양의 스티커 한 조각이 손에 떨어졌다. 모든 스티커를 다 붙인 뒤 오랫동안 형광등을 켜두었다. 그리고 껐다. 우영의 방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환한 빛이 났다.
‘미친개 아니야, 이거?’
우영의 황당하기 그지 없다는 어투. 여상은 희한하게도 그 음성이 아주 또렷하게 기억났다. 몇 시간 전에 우영의 팔을 화려하게 물어뜯은 애물단지. 개는 본디 살던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단 한 번도 짖지 않았다. 입질도 않았다. 여상은 우영을 그 집으로 안내하느라 앞서 걷는 내내 혼곤했다. 어떻게 이런 현실이 다 있지. 우리는 방금 전까지 입술을 맞대고 있었고 지금은 별안간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여상은 뒤죽박죽 빠르게 흘러가는 타임라인 속 그 어디에도 끼어들지 않고 내내 관망만 하고 싶었다.
다들 자러 갈 시간. 벨을 누르니 잠옷 차림의 남자가 인상을 찌푸린 채 문을 열었다. 우영은 제 다친 팔을, 그리고 품 안의 개를 들이밀며 떽떽거렸다. 개 교육을 엉망진창으로 하셨던데요? 우영이 이죽이는 사이 콩콩콩, 조심성 없는 발걸음이 다가왔다. 유행하는 변신 로봇 캐릭터가 그려진 내복을 입은 꼬마가 맨발로 현관을 지났다. 그리고는 개를 안아들었다. 럭키, 럭키! 어른들은 죽상이었고 오로지 아이만 웃었다.
‘그래서 그 팔뚝이, 지금 얘 때문에 난장이 났다는 겁니까?’
‘붕대 풀테니까 딱 봐요. 쟤 주둥이랑 딱 맞는 사이즈로 자국 남았으니까!’
여상은 도망쳤다. 숨이 차도록 달렸다. 갈 곳이라고는 묵고 있는 호텔 뿐이다. 바람에 머리가 흐트러지고 땀이 비 오듯 흘렀다. 호텔 방문을 열어 젖히자마자 구석에 놓아둔 전화기가 울렸다. 주머니에 넣어둔 모토로라에서 호두까기 인형이 흘러나왔다. 여상은 이제 정말, 울 것 같았다. 양쪽 모두 귀가 따갑도록 난리였다. 결국 먼저 입을 다문 것은 묵직한 전화기 쪽이다. 몽환적인 멜로디 사이로 황과장의 상기된 목소리가 들렸다. 강사원, 진짜 개가 정답이었어! 강사원이 맞았다고! 여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를 못 믿었을 때는 언제고.
우영의 선의. 여상이 명중한 정답.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임무를 마친 요원은 더이상 현장에 있을 이유가 없다. 호두까기 인형은 몇 번이고 이어 울렸다. 여상은 그 사이 바삐 움직였다. 수트 케이스를 큼직하게 펼쳤다. 가지고 왔던 모든 것들을 마구잡이로 쏟아넣었다. 지퍼를 닫기 전, 여상은 카펫 바닥 구석으로 눈을 돌렸다. 영웅본색 테이프가 거기에 있다.
여상은 결국 우영의 전화를 받았다. 대체 어디로 샜냐, 잠은 다 잤으니 호프집이라도 갈까, 이러쿵저러쿵. 여상은 건조하게 대답했다. 첫 번째로 우영을 만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딱딱한 말씨를 써본 적이 없다.
‘우영아. 내가 주소 불러줄게.’
왜 나는 너를 좋아하게 됐을까. 너도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어. 후회와 바람이 물감처럼 섞였다.
‘여기로 와서 테이프 좀 가져가주라. 그리고 반납해줘.’
수트 케이스가 길을 나섰다. 여상은 택시를 잡았다. 떠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일곱 번 내내 그랬고,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여상은 떠날 때마다 실감과 거리가 가장 먼 사람이 되었다. 기사에게 근방 전화국의 주소를 불렀다. 수화기 너머 우영이 왜, 네가 해, 하며 투덜거렸다. 자기를 부려먹는 솜씨가 정말 사장님들 같다며 이죽거렸다.
‘그런데 우영아.’
‘왜.’
‘너 있잖아. 혹시 자리가 나도, 주윤발이 아니라 유덕화 하면 안 돼?’
너 주윤발 별로 안 닮았어. 강호동도 안 닮았지만.
여상은 전화국에 도착하자마자 거의 모든 짐을 반납했다. 옷가지, 위조 신분증, 지갑과 신발, 그리고 라임색 모토로라. 무미건조하게 수거함에 담기는 모든 물건들. 여상은 제 시대의, 이 시대의 것과 비교하면 꾀죄죄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관짝 같다는 평을 얻고 둥그렇게 변한 초끈합금 상자에 들어갔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상자의 문을 닫는 직원이 흘리듯 말했다. 문이 닫히기 직전 호두까기 인형이 들렸다. 정확한 곡명은 ‘슈가 플럼 페어리’이다. 이걸 호두까기 인형이라고 일컫는 것은 사과를 과일이라며 아울러 칭하는 것과 같다. 사실 아무래도 좋다. 어떻게든 벨소리를 ‘사랑스러워’로 바꿨다면 여상은 엉엉 울며 과거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면 기어이 성공해 돌아온 여상이 서럽게 우는 것을 모두가 볼테고, 사람들은 수근거리고, 여상은 또 그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서…….
집에 가고 싶어.
여상은 꿈 속의 대양을 헤엄쳤다. 수온은 제 체온을 닮아있어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다는 자각이 없었다. 그래. 상어에게 바다는 집일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상어가 아니잖아. 여상은 눈을 떴다. 부드러운 햇살이 방 안에 퍼져있다. 오후 한가운데의 야광별은 밋밋한 색으로 잠들어있다. 와중에 배가 고팠다. 비척비척 걸어 찬장을 뒤졌지만 먹을만한 것이 없다. 이번에는 초콜릿을 사서 복귀하지도 못했다. 여상은 거실과 부엌의 경계에 섰다. 이제야 집의 뜻을 알 것 같았다. 집은 내가 응당 있을 곳이다. 이곳은 집이 아니다. 나는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아. 그러면 어디에 있고 싶어?
우영은 답하지 않았다. 여상은 우영의 속을 알 길이 없다. 눈치를 잘 보는 것과 사람의 속내를 꿰뚫는 일은 전혀 다른 것이다. 우영은 여상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영은 남자애와의 입맞춤 따위는 발칙한 일탈 즈음으로 해치울 수 있을 만한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키스의 소감도 몰랐다. 모든 키스를 마친 사람들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을 소감 따위를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우영 또한 그 입맞춤이 좋았는지 알 길이 없다. 우영이 여상을 사랑해도 문제다. 그게 얼마나 영양적인 사랑인지, 얼마나 공을 들여 할 셈인지. 모든 것이 캄캄하다. 여상은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른다. 물론 제 마음만을 위시해 미래에 남는 선택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직장과 변변치 않은 교우관계를 잃고, 저도 모르는 곳에서 조합원들의 감시를 받는 삶을 기꺼이 살아갈 수도 있지. 거기에서 우영이 오션 관광 나이트를 졸업하고 대학으로 돌아가는 것을 볼 수도 있겠다. 하다 못해 선택할 수 없다는 최악의 경우에 처해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 너무 겁이 나. 내가 너에게 모든 것을 걸어도 될까. 내가 그 옥탑을 내 집처럼 삼아도 될까. 그순간 여상의 콧잔등 위로 금속 냄새가 굴러갔다.
여상은 회상했다. 연구부에서 현장직으로 부서 이동을 감행한 이유를.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 알 수 없던 것을 알기 위해서. 그 용기는 어디에 있었나.
여상은 짤막한 공원을 가로질렀다. 꾸벅꾸벅 졸던 이들은 휴가를 떠난 사람이 벌컥 회사에 들이닥친 것에 놀랐다. 황과장은 침을 튀기며 눈을 뒤집었다. 여상은 아직 폐기되지 않은 제 물건들을 찾았다. 라임색 모토로라가 분홍색 모토로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용기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헤쳐나가야 할 때가 있다. 미지를 사랑하는 법은 그렇다.
“너 어디에 있었어!”
“우영아!”
“장난해, 진짜? 연체료 삼백 원 뭔데!”
“나 너 좋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여기에 왔어. 차마 하지 못하고 삼킨 말. 여상은 그제야 덜컥 겁이 났다. 아무리 씩씩하려 해도 울먹임이 목울대를 타고 넘어왔다. 익숙해진 오르막을 향해 무작정 뛰었다. 아직 이곳은 오후다. 우영이 출근하려면 이른 시간이다. 아마 방금 눈을 떴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영의 옥탑방으로 가는 길목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익숙한 동네에서 미아가 되어 두리번댔다. 여상은 인정했다. 동시에 더는 부정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우영의 옥탑으로 가며 길을 살필 여유 따위는 없었다. 두근거려서. 두근거리느라 머리가 멍청해져서.
“이제, 이제…….”
이제 네가 대답해. 한 철짜리 휴가 같은 감정이라도 좋아. 나는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을래. 여상이 제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십육 년을 앞선 시대. 직업도 집도 돈도 없이 무작정 도착한 대책 없는 방문자. 제 처지가 날붙이처럼 푹푹 박혀왔다. 달리기는 커녕 걷기도 무서웠다. 무언가 자꾸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콩알만큼 줄어든 담력이 외쳤다. 지금이라도 돌아가. 죄송하다고 해.
“너 뭐 하냐, 거기서?!”
여상은 위를 쳐다보았다. 창틀에 몸을 주욱 빼낸 우영이 대롱대롱 걸쳐져 있었다. 여상은 수화기에 입을 붙이고 아이처럼 졸랐다. 대답해, 빨리 대답해. 내가 틀린 선택을 했다 해도 괜찮다고 대답해. 우영은 제 핸드폰 덮개를 툭 덮었다. 전화는 뚜우뚜우 소리를 내며 끊어지고, 분홍색 모토로라는 비스듬한 햇빛을 받아 요란하게 번쩍였다. 빛으로 만든 선 사이로 우영이 입을 열었다. 큼직하기도 했다. 여상은 그제야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웃었다. 우영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웃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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