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중성화] 생의 한가운데 下 - ichigo




달그락달그락. 집에 들어오자마자 맑은 소리가 났다. 구두를 벗고 있자니 옅은 세제 냄새도 났다. 부엌에 서서 물을 콸콸 흘려보내는 건, 어째 앳된 쪽이 아니라 나이 든 쪽이다.

“꼬맹……애는 어디 갔어?”

어떻게 된 게 너네는 교대로 시야에서 사라지냐? 그래도 집이라고, 들어서니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그제야 몸 이곳저곳이 뻐근한게 느껴졌다. 어제는 어깨더니 오늘은 목이다. 성화가 제 목을 여러 차례 꺾고 늘렸다. 나이 든 쪽은 설거지가 아니라 물장난을 친 건지, 바닥에도 튄 물이 한가득이다.

“……꼬맹이 아파.”
“아프다고?”
“감기인가 봐.”
“아침에는 멀쩡했잖아.”
“아니야, 훌쩍거렸어.”

그리고 나는 원래 갑자기 아파. 나이 든 쪽이 웅얼거렸다. 그러긴 했지. 성화가 뒤늦게 반성했다. 홍중은 꼭 건강하게 잘 지내는구나, 싶으면 돌발적으로 골골대고는 했다. 그때마다 약 먹고 자면 낫는다고 둘러대길래 속상한 게 한두 차례가 아니었는데. 그게 쌓이고 쌓이다 보니 만성적으로 여겨지는구나. 침실에 가득하던 사진들처럼. 성화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자 나이 든 쪽이 덧붙였다. 그래도 네 탓이 아니니까.

레토르트 죽을 사다 끓였는지 빈 플라스틱 통이 개수대 근처를 뒹굴고 있었다. 성화는 반틈만하게 열린 침실을 바라보았다. 불이 다 꺼져 어둑한 방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몇 분을 그릇과 씨름하던 나이 든 쪽이 드디어 물을 껐다. 그리고 성화가 앉은 식탁 앞을 어정쩡한 자세로 돌아다녔다. 소파로 갈지 말지 고민하는 것 같기에, 성화는 팔을 뻗어 식탁을 두드렸다. 나이 든 쪽이 조심히 의자를 꺼냈다. 어쩐지 성화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그리고 역시나.

“찬장 좀 뒤졌어. 상비약 둔 데가 가물가물해서…….”

나이 든 쪽은 좀처럼 성화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내가 불편해?”
“……아니.”
“아니야? 그럼 나도 너한테 형이라고 할까?”
“무슨……그런 말을.”
“홍중이형.”
“…….”

네가 나를 껄끄러워하는 것 같아서 그래. 나이 든 쪽은 되려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성화는 차라리, 이대로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대에 푹 파묻히고 싶었다. 앳된 쪽이 겨우 잠들었건 말건. 창피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내가, 내가 좀 오락가락 하나 봐. 홍중이가 나랑 같이 있어 주지 못하니까……. 그니까 내가 말하는 홍중이는,”
“알아들었어.”
“그래도 꼬맹이보다는 네가 지금의 홍중이랑 가깝잖아. 또 어른이고. 나랑 오래 같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자꾸 너를…….”

꺼내서 줄줄 늘어놓고 싶은 말은 한가득인데. 성화는 겨우 터놓은 속을 다시 단단히 틀어막는데에 급급했다. 이래서는 나이 든 쪽을 대신 괴롭히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성화는 그걸 잘 알고 있다. 언제 어디서 배워왔을지 모르는 담배를 태워도, 아무리 자신과 서먹하게 군다 해도. 나이 든 홍중이 기꺼이 받아들여 줄 마음의 무게는 결코 아니다. 수천 번을 저울질 한 결과 고장 나는 것은 마음속 저울이 아니라 스스로일 뿐. 성화는 결국 완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내가 정말 묻고 싶은 것은, 너를 처음 보자마자 알고 싶었던 건…….

“반지는 어디에 있어?”

취업에 허덕이던 사람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었다. 졸업장을 따놓고도 한동안 학생 같은 데이트를 했다. 그런 와중에 반지를 맞췄다. 저렴한 것들 중에서도 저렴한 것이다. 어엿한 집이 생기고 나서도 반지는 바뀌지 않았다. 홍중은 슬쩍슬쩍 새 반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성화는 고개를 저었다. 이게 손에 익어서. 아직 좋은 디자인을 못 찾아서. 이왕이면 주먹만한 다이아가 박혔으면 좋겠다고 택도 없는 농담도 했다. 반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은색의 띠 안에는 자잘한 흠집들이 보였다. 사선으로 난 옅고 길쭉한 홈들. 성화는 그게 꼭 나이테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평생을 자란다는 거북의 등갑 같기도 했고. 쌓아 올린 시간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보물이고, 그렇기에 더 버젓이 내놓은 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이 든 쪽의 왼손 약지는 희끄무레한 선만이 남아있다. 처음 홍중‘들’이 거실에 서 있는 것을 보았을 때에 진즉 눈치챘었다. 당장 묻고 싶었지만 경황이 없어서. 그 뒤로는 앳된 쪽의 눈을 속이겠다고 난리법석이어서. 미루고 미루던 질문을 이제야 했다.

“두고 왔어.”
“왜?”
“일하다 잠깐 빼둔 사이에 여기 와버려서.”

그럼에도 나이 든 쪽은 태평한 목소리로 답했다. 대체 무얼 걱정하냐는 듯이. 홍중은 펜을 오래 잡고 있을 때면 반지를 벗어두었다. 성화는 이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아침에 세면대 위에 반지를 올려놓고는, 점심 즈음 성화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성화는 반가운 마음에 답싹 전화를 받았는데, 홍중은 두 번 다시 듣지 못할 만큼 침울한 목소리로 고백했다. 나 반지 잃어버렸어. 정말 미안해. 성화는 실컷 놀려주려다가 그 애가 죽는 시늉이라도 할까 싶어, 조근조근 오늘 아침의 욕실 풍경을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 후로도 홍중이 줄기차게 사과하는 통에 귀가 다 간지러웠다. 성화에게는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연애의 단편이다. 그럼에도 자꾸만 불안이 치밀었다. 나는 앳된 너에게도 서스럼없이 대할 수 있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와하학 웃어버릴 수도 있는데. 너는 나한테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뻣뻣하게 굴잖아. 그렇게 벽을 치고 지내는데 그 말을 어떻게.

“믿을게.”
“…….”
“내가 너 아니면 누굴 믿어.”

그래도.

마음이 기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불안한 마음은 쉽게 요동친다. 마음을 동여맨 끈을 놓쳐버리면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달려 나갈 것 같다. 성화는 제 허리를 바짝 세웠다. 등이며 목이 온통 빳빳하게 저렸다. 조용한 식탁. 조용한 안방. 성화는 부지불식간에 제 머리를 쥐어뜯을 것만 같아 벌떡 일어났다. 나이 든 쪽의 시선은 식탁으로 내리꽂혔다. 중죄라도 저지른 것 같은 태도다. 성화는 부러 모른 체 했다. 씩씩하게 치킨을 배달시켰고, 냉장고 구석의 캔맥주를 꺼냈다. 배달받은 치킨은 앳된 쪽의 몫을 덜어둔 뒤 거실로 날랐다. 텔레비전을 틀었다. 나이 든 쪽과 성화가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 텔레비전 속 연예인들이 무어라 떠들어댔다. 다들 한순간에 와악 웃었고 또 한순간에 어깨를 늘어트렸다. 그렇게 아우성을 쳐대는데도, 그 말들이 머릿속에 들어오지는 못했다. 성화는 초조하게 제 왼쪽 엄지를 움직였다. 손톱 끝에는 이제 피부 같은 반지가 툭툭 걸렸다.







토요일


홍중과 성화는 둘 다 예민한 구석이 있었으므로, 둘은 이 여정이 꽤나 순탄할 것이라는 착각을 한 적이 있었다. 예민하다는 것은 아무 때에나 날을 세워 다툴 수 있음을 뜻하고는 했으나 외려 그 반대였다. 상대에게 드리운 기분을 잘 파악하는 것. 그게 예민이라는 성정의 축복이라면 축복이겠다. 매대에서 잘 익은 과일을 고르는 것처럼, 한 발짝 먼저 물러서 서로를 살펴보면 싸움을 피할 수 있었다. 직접 감정을 부딪쳐 보지 않은 이론상으로는 그랬다. 싸우지 않아야 안정적인 연애라는 순진한 생각도 큰 몫을 했다. 홍중과 성화는 이 연애를 그런 방식으로 간과했다. 사랑은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인데, 때때로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사람이다. 서로를 이해해. 서로를 보듬어. 자신 있던 연애는 아차 하는 사이 귀퉁이가 찌그러졌다. 성화는 제가 홍중을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했다. 예민은 개뿔. 첫 싸움은 취중진담으로 시작했다.

사랑해. 사랑한다고 해줘. 나한테 먼저 말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먼저 하면 죽어? 내가 사랑한다고 하면 너는 매번 나도, 나도, 나도. 벌그죽죽한 얼굴을 한 성화가 볼멘 소리를 했다. 몇 년을 친구로 살았는데. 이제 연인이라는 단어로 묶였다 한들 낯 간지러운 ‘사랑’ 소리는, 성화에게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입 밖에 내버릇해야 했다. 눈빛과 몸짓만으로 사랑을 집어낼 수 있다만 입은 뒀다가 어디에 쓰려고. 홍중은 꺾어 마시던 잔을 손에 쥐고는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둥그렇게 뜨인 눈을 느리게 꿈뻑거리기를 수 차례. 홍중이 입을 열었다.

‘나도 너 사랑하지.’

거기서부터 걷잡을 수 없었다. 엎드려 절이라도 받는 기분. 홍중이 이 상황을 빠져나갈 궁리만 한다고 느껴졌다. 재수 없고 얄미웠다. 성화는 불분명한 발음으로 나불거렸다. 네가 먼저 고백했잖아. 너 내가 안 아쉬워? 네 손 안에 들어왔다고 막 굴리는 거야, 뭐야. 그 소리에 홍중은 제 잔을 내팽개치듯 내려놨다. 너 말이 심하다. 네가 더 심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그럼 너는 사랑한다는 말에 꿀 발라놨냐? 너 술 깨면 후회해…….

성화는 그렇게 미워 죽겠는 홍중이 불러준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그리고 눈을 뜬 지 반나절이 지나서야 홍중에게서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길고 길어 읽는 데에만 한참이 걸렸다. 분명 술 깨면 후회할 거라며 으름장을 놓고서는. 홍중의 메시지는 집에 돌아간 뒤로 많이 생각해봤다, 라는 말로 시작해서 용서를 구하는 말로 꽉 차 있었다. 내가 네 마음을, 나도 표현하고 싶은데 서툴러서, 나도 너를 정말 많이. 마음의 가장 밑바닥에서 끌어올려진 반짝반짝한 감정들이다. 연애에 도가 튼 뭇사람들은 그 구구절절함에 싫증이든 질색이든 표했겠으나, 성화는 한참이나 메시지를 들여다 보았다. 엄지로 차갑고 미끈한 화면을 몇 번이나 쓸어내렸다. 사랑해, 일어나면 연락줘. 성화는 마지막 문장을 보며 기지개를 켰다. 마음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을 보아하니 이거 정말 중증이구나, 싶었다. 대체 사랑이라는 건 어떻게 성립되는 걸까. 한쪽의 부푼 마음은 어떻게, 다른 한쪽의 마음을 제 덩치만큼 부풀리는 걸까. 심오하되 잡스러운 생각은 통화 연결음이 끝나자 솨아아 흩어졌다. 이거 웃긴 일이네. 성화는 홍중이 말을 꺼내기도 전부터 픽 하니 웃음을 터트렸다.

“개 버릇 남 못 주네.”

성화는 밤사이 김이 빠진 맥주를 개수대에 흘려보냈다. 명줄이 다한 퀘퀘한 술 냄새가 빈속을 때려 울렁거렸다. 거실에서는 이르게 눈을 뜬 나이 든 쪽이 제 뒤통수를 헤집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퍼지고 엉키는 건 어느 시간대의 홍중이라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성화가 배수구 위로 수돗물을 촤아 쏟았다. 빈 캔을 든 손이 픽 하고 늘어졌다. 알루미늄과 알루미늄이 맞닿는 경쾌한 소리에도 성화의 심중은 우중충하기만 하다. 젖은 손을 대강 옷에 문질러 닦으니 어제 조금 남겨둔 치킨이 보였다. 아마 앳된 쪽이 몇 조각 집어 먹긴 한 것 같은데, 반도 줄지 않았다. 성화는 침실로 향했다. 나이 든 쪽이 부은 눈으로도 성화의 꽁무늬를 쫓았지만 부러 반응해 주지 않았다.

홍중아, 잠깐 일어나봐. 성화가 나직하게 말했다. 성인 둘이 눕는 침대를 혼자 쓰는데, 앳된 쪽은 제가 무시무시한 폐라도 끼치는 것이라 생각하는 걸까. 앳된 쪽은 침대 가장자리로 쫓겨난 듯 웅크리고 있다. 자기도 김홍중 아니랄까 봐. 홍중이 주로 눕는 침대의 왼쪽 면이다. 성화는 앳된 쪽의 이마를 덮었다. 감기와 잠 덕에 미열이 자글자글 끓고 있었다. 앳된 쪽은 실눈을 떠서 주위를 살피다, 이내 베개에 제 얼굴을 묻었다. 우물쭈물하는 움직임이 꼭 잠투정이라도 부리는 듯했다.

“몸은 좀 어때?”
“……괜찮아요.”
“너 목 다 상했구나.”

괜찮다고 말한 것은 순전 배려겠지. 성화는 그게 안쓰러워 이불을 둘러싼 어깨를 도닥거렸다. 무르디무른 주말의 초입 같은 풍경이었으나,

“기분 상하는 일 있었어요?”
“아니.”
“목소리가 가라앉았는데요.”
“목 아프면 말 안 해도 돼.”

겉모습만 제안이지 순전 강요였다. 아무것도 몰라도 되는 앳된 쪽에게 제 기분이 탄로 난 것이 영 탐탁치 않아서. 앳된 쪽은 네, 하더니 입을 쏙 다물었다. 성화는 숨 쉬는 게 불편할 테니 편히 누우라는 말이 채 나오지 않았다. 앳된 쪽의 얼굴을 보면 난잡하게 그을린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이밀 것 같았다. 성화는 제가 한없이 유치하고 속 좁은 사람임을 자각했다. 어린애 앞에서 심술부리는 어른이 무슨 어른이야.

사랑한다는 말이 뭐가 그렇게 어려워. 첫 싸움은 반면교사가 되지 못했다. 그 주제로 다툰 게 벌써 몇 번이더라. 지지부진한 싸움은 모조리 홍중의 사과로 마무리되었다. 성화가 뻣뻣하게 서운함을 토로하고, 홍중은 비죽이고, 결국 성화가 화를 내면 홍중은 느즈막히 사과했다. 지겨운 패턴이다. 과거를 찍어낸 듯 똑같은 싸움을 하게 되면, 싸우던 와중에도 화해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매번 구구절절 미안함과 사랑을 표현할 바에는 넙죽 사랑한다고 말하면 되지 않나. 성화가 생각하는 홍중은 그렇게나 비효율적이다. 눈빛으로도, 몸짓으로도 전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지만 그건 결코 말만큼 명확한 표현은 아니다. 정말 내가 너의 사람이 되어서 그렇게 안일한 걸까. 홍중과 함께하면 성화는 매번 저 앳된 쪽의 또래가 된다. 일찍이 연애를 시작해 조금도 자라지 않은 것처럼. 홍중은 저 멀리에서 정장을 입고 있는데 자신은 아직도 교복 차림인 양.

불안은 성화가 쏟아버린 김 빠진 맥주처럼 찝찝한 냄새가 나고, 그건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지난 새벽 내내 성화는 고분히 잠들기 어려워했다. 심지어 바닥에서 잠든 나이 든 쪽이 깰까봐 뒤척이지도 못했다. 마네킹처럼 누워 컴컴한 천장을 바라보는 내내 속이 울렁거렸다. 말로는 믿는다고 했으면서 나이 든 쪽을 의심했다. 과거는 기억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다. 추측은 난무하지만 무엇 하나 또렷한 사실이 되지는 않는다. 그게 성화를 좀먹었다. 혹시라도 우리가 나중에. 그렇게 사랑에 빠져놓고서는. 성화는 결국 두려움을 못 이겨 벌떡 일어났다. 묵직한 전화기를 찾고는 발코니로 향했다. 발끝이 차가워졌다. 성화는 유리창 너머 나이 든 쪽을 내려다봤다. 몸통이 느리게 부풀고 꺼졌다. 부디 저 모습이 자는 척이 아니길 소망하며 다이얼을 눌렀다.

‘아직 안 잤어?’

잠이 안 와. 성화는 제가 운을 뗐다고 생각했지만, 홍중은 ‘여보세요’ 하며 재차 물었다. 거긴 아침이겠지. 홍중은 잠자코 성화의 침묵을 듣고 있었다. 작은 숨소리가 바늘땀 같은 구멍으로 새어나왔다. 성화는 안심이 된다기 보다는,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진 말을 떠올렸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대. 남들이 생각하기에는 고작 몇 주지만, 성화에게는 벌써 몇 주씩이다. 못 본 지 오래된 얼굴. 분명 이 집에는 홍중이 둘씩이나 있음에도 슬그마니 흐려지는 홍중의 얼굴, 향, 머리칼과 살갗의 감촉, 온기 따위가 성화의 발등을 자근자근 밟아왔다. 그러나 두려워 울어버리기에는 요원한 감각. 온갖 것들이 뒤섞여 거무튀튀한 색으로 물들었다. 성화는 무릎을 끌어안고 수화기를 제 귀에 바짝 붙였다. 불안은 마른 풀밭에 날아든 불씨와도 같다. 쉽사리 크게 번져 멀리서도 보인다. 그래서 어쩌면, 홍중이 제 불안을 눈치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화를 끊어버리거나 말을 재촉하지 않는 걸까. 성화는 입술을 잘근잘근, 한참이나 씹다가 겨우 소리내어 말했다.

‘사랑해.’
‘나도.’

너도 참. 나도, 같은 말로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서 참 좋겠다. 앳된 쪽을 토닥이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성화는 선잠에서 깬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제 손을 떼냈다. 앳된 쪽은 여태 투박한 손길을 버티고 있었다. 성화는 냉큼 사과하기가 멋쩍어 모르는 척 손을 물렸다. 앳된 쪽은 손길이 가시자 제 이마를 베개에 비볐다.

“있잖아요.”
“응.”
“새벽에 누구랑 싸웠어요?”
“……시끄러웠어?”
“아니요.”

앳된 쪽이 몸을 꾸물거렸다. 이불을 한참 바스락대고 나서야 몸통이 천장을 봤다. 그리고 양손을 쑥 끌어 올리더니 제 얼굴을 푹 가렸다. 엉망이 된 앞머리와 손가락 사이로 매끈한 이마가 보였다. 성화는 부러 헛기침을 했다. 제 목울대를 괴롭히지 않고서는 창피함을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누구랑 싸웠는지 물어봐도 돼요?”
“안 돼.”
“네에.”
“얼굴은 왜 가리고 있어?”
“부어서 못생겼잖아요.”
“새삼?”
“그래도 싫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고집은 참 세다. 성화는 홍중을 헤아리다 거실에 있는 나이 든 쪽을 떠올렸다. 그래. 개 버릇 남 못 주지. 그럼 나이 든 쪽도 한 고집 할 텐데. 성화는 며칠 얼굴을 맞대고 지냈다고 익숙해진 얼굴을 찬찬히 그렸다. 눈매도 입매도 고집과는 조금 거리가 먼 듯했다. 성화는 그 인상이 미래의 홍중에게 그대로 투영되기를 바랐다. 좀 더 유들유들해지고. 융통성이 생기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애인이랑 싸웠어.”

이 세상 모든 불안이 나만의 것이라는 생각보다 무섭고 무거운 것이 따로 있다. 우리 둘 중에 나만이 불안한 것 같다는 것. 그게 성화의 발목에 대롱대롱 매달려 수렁의 가운데로 파고들었다. 차라리 딱 여기까지만 했다면 억지로 버텨볼 수는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홍중이 말없던 자신에게서 불안을 읽지 못한게 아닐까. 내가 불안한걸 알고 있으면 그렇게 애지중지 여겨 먼저 꺼내놓는 법이 없는 사랑한다는 말을 턱 내놓았어야지. 차마 갈 수 없는, 홍중이 겪는 시간과 장소. 그 격차를 잠시나마 해소시킬 수 있는 것은 확증된 애정 뿐이다. 그런데 내 미련한 연인은 그것도 모르나. 앞으로 몇 년을, 아니면 몇십 년을 함께 해야만 더할나위 없이 완벽해지나. 개 버릇 남 못 준다지만 성화는 자꾸만 홍중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사랑한다고 해줘. 내 불안을 알아줘. 덜덜 떨며 외치고 싶을만큼 괴로움에도 홍중과의 먼 미래를 그린다. 들끓는 속마음은 줄기차도록 같은 말만을 반복한다. 그렇게 짜증스러운데도 사랑해.

“……왜 벌써 애인이 있어요?”
“홍중아. 나 내일 모레 서른이야.”
“그 사람이 잘못했죠?”
“…….”
“그 사람이 잘못했네.”
“나 아직 대답 안 했어.”
“뻔하죠, 뭐. 형은 그렇잖아요. 다른 사람이 잘못해도 자기 잘못인 것처럼 묻고 가고. 책임지는게 자기 일인 것처럼.”

내가 언제 그랬어. 성화는 비죽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꼬맹이 상대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람.

“연애 재미있어요?”

응. 성화는 긍정했다. 어설프고 허술해도 연인이라서 즐거운 나날들이 선명했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했다. 우리가 좀 더 일찍 사랑에 빠졌더라면 어땠을까. 친구로 포장하며 물에 흘리듯 보낸 시간이 아쉬울 때도 있었다. 홍중이 결코 백 점 짜리 애인이 될 수는 없더라도. 애정으로 그득 메워진 날들이 삶에 며칠이라도 더 있었더라면. 그런 소소한 미련 같은 것.

“저랑은 잘 지내요?”

아마도. 이번에는 두루뭉술한 답변이 튀어나왔다. 성화는 그 애매함이 못내 마음에 걸려 덧붙였다. 네가 정리정돈 좀 잘 하고 재깍재깍 잘 일어나기만 하면 딱 좋을텐데.

“저는 좋은 사람으로 컸어요?”
“……별걸 다 궁금해 해.”
“사실 저는 좀 실망했어요. 미래에서 왔다는 나는 좀……. 불성실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저런 어른이 되기는 싫어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어요. 귓바퀴를 못 괴롭혀서 안달이 났나. 그렇게 숭숭 뚫어놓으면 대체 누가 좋아해요? 팔이랑 발목에 문신도 있던데. 엄청 대단한 의미도 아닌 것 같죠? 그리고 저보다 더 오래 자는 것 같으면서 맨날 피곤해 보이지 않아요? 인상 쓰고 있고. 꿍꿍이 있는 사람처럼 음침하고. 겉은 번지르르한데―성화는 앳된 쪽이 떠벌거린 나이 든 쪽의 외양을, 사실 제법 선망하고 있는 것이라고 추측했다―속알맹이는 하나도 안 큰 사람 같아요. 형 없을 때에는 진짜 가관이에요. 야, 꼬맹아. 꼬맹아 밥 시켜라. 쬐끄만게 말대꾸를 하네. 나랑 키도 똑같으면서……이건 좀 슬프네요. 그러고는 마른 기침을 서너 차례 했다.

“……목 아파요.”
“그래. 좀 쉬어.”

성화는 느릿하게 일어섰다. 문을 향해 발을 끌며 걸었다. 앳된 쪽은 얼굴을 가린 양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문을 열기 직전, 문득 뒤를 돈 성화와 짤막하게 눈을 맞췄다. 앳된 쪽은 소동물처럼 기민하게 제 눈을 다시 가렸다. 꽁꽁 싸맨 얼굴을 향해 겨우 웃어줄 수도 있었지만, 성화는 문고리를 잡는 것을 선택했다. 침실 밖은 오묘하게 서늘했다.

물이 덜 마른 부엌 개수대. 엉성하게 접혀 소파 위에 놓인 나이 든 쪽의 이부자리. 정돈되고 고요하지만 휴일다운 느긋한 여유는 없다. 성화는 집 안을 어슬렁댔다. 어디에도 나이 든 쪽이 없었다. 담배 한 대 태우러 나갔겠지. 머리는 결론을 내놓았는데 손바닥은 영 긍정하지 못했다. 손끝은 쉽사리 차가워지고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아, 나 안심했었구나. 앳된 쪽과의 득도 실도 없는 대화로 잠시 잊어버린 것이 손에 주렁주렁 맺혔다. 목이 조금 늘어난 티셔츠와 후줄근한 잠옷 바지. 성화는 제 옷차림은 신경도 쓰지 않고 현관을 향해 달렸다. 눈에 잡히는 아무 신발이나 맨발에 욱여넣었다.

엘리베이터가 하강하는 동안 성화는 줄기차게 다리를 떨었다. 축축한 손을 옷에 마구잡이로 문지르는 동안 입이 바싹 말랐다. 목울대 안쪽도 버석해서, 입을 열면 앳된 쪽처럼 쉰 목소리를 뱉을 것 같았다. 야트막한 계단을 도약하듯 뛰어내려왔다. 성화는 도리질 치듯 시야를 빠르게 돌려댔다. 나이 든 쪽의 뒷모습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바람이 불어 뱉어내는 연기가 마냥 옅었다. 낯섦과 동시에 눈에 익어 언제든 그려낼 수 있는 그 애. 성화는 그리도 급하게 뛰쳐나왔음에도 차분히 걸어갔다. 맥 없는 발걸음과 흔들리는 팔이 꼭 제 의지가 아닌 듯 했다. 눈앞에서 사라지니 그렇게 초조했으면서. 사랑한다는 단순한 말로 제 속을 까맣게 태운 지금의 홍중이 아님을 알면서. 나이 든 쪽이 인기척에 뒤를 돌았다. 뼛속에 음울함히 박힌 사람처럼 표정 없이도 막막해 보이는 그 얼굴.

“솔직히 말해.”

믿음과 배려라는 명목으로 부릴 여유가 동났다. 성화는 결국 제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우리 헤어졌지?”

긍정하면 어쩔 셈인데. 그러면 네 마음이 편해지겠니. 성화는 자문했으나 심중은 태풍 직전의 하늘처럼 쾌청하다. 홍중이 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된 날 이후로 이렇게까지 마음이 가벼웠던 적도 없던 것 같다. 모든 것이 남의 일 같다. 나이 든 쪽은 물끄러니 성화와 눈을 맞췄다. 성화는 그제야 제 개운함의 뒷면을 보게 됐다. 막대한 두려움에 고양되는, 아주 짧고 겁이 없는 시기일 뿐이었다.

“아니라니까.”
“…….”
“믿어줘.”
“내가 너를 어떻게 마냥 믿어.”

성화는 어젯밤 제가 한 말을 번복했다. 자존심도 뭣도 없지. 성화는 제 팔을 벌렸다. 그럼 나 안아줘. 으름장이라도 놓듯 선언했다. 얇은 옷가지 사이로 바람이 술렁이며 들어찼다. 성화는 한기에도 굴하지 않고 버텼다. 나이 든 쪽은 주저하며 팔을 벌렸다. 성화의 옆구리에 온기가 스몄다. 나이 든 쪽의 코끝이 성화의 어깨에 짓눌렸다. 나이 찬 남자 둘이 길바닥에서 끌어안고 있는 모습. 퍽 기묘한 풍경일지 몰라도 성화는, 길디 길게 나이 든 쪽의 등을 죄였다. 축축했던 손바닥을 쫙 펼쳐 쓰다듬었다. 잘게 붙은 근육 위로 줄줄 녹아 스며들고 싶지만,

“울지마, 홍중아.”
“…….”
“그냥 알려줘. 언제 헤어졌는지.”
“……안 돼.”
“내가 더 잘 할게, 그러면 되잖아…….”

나이 든 쪽이 고개를 저었다. 머리칼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성화는 그게 간지러워 작게 움츠렸다가, 이내 어깨를 늘어트렸다. 내가 질색하며 깔끔 떨지 않으면, 네 걱정을 앞세워 잔소리를 줄줄 늘어놓지 않으면, 사랑한다는 말을 뱉기를 종용하지 않으면……그래서 나이 든 쪽이 마주한 이별을 피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바지런히 애쓰겠노라는 다짐이었다. 홍중이 하는 일이 그렇지 않은가. 미래에 반드시 필요한 일을 꾸며내는 것. 시간 여행자의 연인으로서 그걸 흉내낼 수만 있다면 적어도, 지금의 우리는 아플 일이 없을 테다. 성화의 품 안, 나이 든 쪽은 참 어정쩡하게도 몸을 굳히고 있었다. 힘을 주어 안지 못해 팔을 두르고 손을 얹은게 다인 처량한 모양새다. 어깨 맡에서 눅눅한 목소리가 웅얼거렸다. 네 잘못이 아니야. 모조리 내 잘못이야. 너는 단 한 번도 나한테 잘못한 적이 없어. 네가 안다고 해도,

“달라지는게 없으면 어떡해.”
“그럼 대체 그 일은 왜 한거야? 너는 네 손으로 온갖 미래를 다 바꾸고 다녔으면서,”
“단번에 미래가 바뀔 확률은 높지 않아. 다들 실패가 일이였어.”
“그래도 알려줘.”
“아무 것도 안 바뀔 수 있다니까.”
“바꿀 수도 있잖아!”

심약해서 금방 울어버리는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고. 고집 부리는 것도 빼다 박았어. 성화는 속상한 마음에 언성을 높였다. 나이 든 쪽은 숨이 멎는 양 굳었다.

“성화야. 나랑 너한테는 과거로 돌아간다는 선택지가 없어.”
“뭐?”
“바뀔 기미가 안 보이면? 둘이 상의라도 할거야? 나란히 앉아서 홍중아, 우리는 이 날 헤어질테니까 조심하자. 이런 얘기라도 하려고?”
“어. 할 거야.”
“그럼 너는?”

그때까지 매일 벌벌 떨고 있으려고? 길게는 사 년을? 나 너 그렇게 사는건 못 봐. 그냥, 그냥 알려주는게 아니었어. 나이 든 쪽은 번민하듯 중얼거렸다. 성화는 앳된 쪽을 떠올렸다. 그 애는 성화에게 책임지는 것이 자신의 일인 것처럼 군다고 했지. 그러나 나이 든 쪽은 철저히 제 탓을 했다. 앳된 쪽은, 더 나아가 나이 든 쪽과 아마 지금의 홍중마저도. 무언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 언제나 먼저 사과하는 것은 홍중의 일이었다. 홍중 역시 책임을 끌어안고 산다.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은 것이 제 잘못. 일을 명분 삼아 어디로든 뿅 사라져 성화의 애간장을 다 녹이는 것도 제 잘못. 무한한 내 탓의 세계. 휘저은 물처럼 소용돌이 치는 자책을 떠맡는 일상. 성화가 그 옆에 붙어 정신을 쏙 빼놓지 않으면, 홍중이 혼자 남겨졌을 때에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나. 성화는 제 팔을 스르르 떨구었다. 온기와 압박감이 사라지니, 나이 든 쪽도 언제까지고 성화를 껴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두른 팔을 물렸다. 나이 든 쪽은 제 시간대로 돌아갈 때까지 제 머리꼭지만을 보여줄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나와 함께 있을 네가 제일 걱정돼.”

홍중의 속닥임은 아주 작으니 오로지 성화만이 들을 수 있다. 그게 애정 표현이든, 고뇌와 걱정이든, 홍중이 소근소근 뱉는 말은 곧 그 애의 진심이다. 성화는 그것만은 잘 알고 있었다. 매일 세 끼 밥보다 초조함을 더 먹고 살아야 하는 성화. 홍중‘들’이 사라져도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을 성화. 무신경하게 반응했으나 닥쳐올 이별을 대비하자는 말을 쉽사리 꺼내지 못할 것이 분명한 성화를. 나이 든 쪽은 아마 이 집에 처음 떨어지게 된 날부터 염려했을 것이다. 순 자기 멋대로인 이 미래의 연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성화는 도로 막막해졌다. 동시에 이 지지부진함에 맞서 싸울 용기도 픽 꺾이고 만다. 나이 든 쪽이 이별의 내막에 대해 함구하고, 그 앞에서 고집을 부린다면. 지금 성화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여느 신을 찬미하는 사람들처럼 숭고하게 미래를 받아들여야 하나. 죄책감 같은 무력함 때문이다.

“너 지갑 있어?”
“…….”
“그럼 나간 김에 죽 좀 사와. 꼬맹이 먹이게…….”

죽은 척. 그것 마저도 먹히지 않으면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기. 생존 본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방어적인 태도가 튀어나왔다. 성화는 끝끝내 나이 든 쪽을 살펴주지 않고, 방향을 틀어 집으로 향했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아 건물 안에 도착할 텐데. 그 어떤 귀갓길보다 고됐다. 이대로 길바닥에 버려지고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다리가 움직이면 굴러서라도. 성화는 우리의 집을 찾아 나아간다. 우리가 이곳에 뿌리내린 이상 언제나 마음이 놓일 유일한 장소. 나이 든 쪽은 성화를 좇지 않고, 성화는 뒤돌지 않았다. 마지못해 박정하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구나.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고, 성화는 그 철제 상자의 구석에 쪼그려 앉았다.

성화는 날이 저물고 다른 세대의 불이 다 꺼질 때까지 소파 위에 엎드려 누워있었다. 침실에서는 밭은 기침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나이 든 쪽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요일


성화는 홍중을 막 알게 되었을 무렵을 떠올렸다. 숨을 내쉬는 것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상해버려서, 그렇다고 홍중의 생각을 그만둘 수는 없어서 떠올려낸 방법이다. 먼저 아득한 교정을 그렸다. 좁아터진 운동장. 너덜너덜한 골대. 디귿자로 생긴 본관 건물. 수많은 이들이 수없이 밟고 지나가 얼룩덜룩해진 복도의 타일. 조각도 따위로 만든 홈이 그득한 책상. 교실 한가운데에서 옆으로 치우친 곳에 홍중이 있다. 앳된 쪽과 똑같은 얼굴이다. 쉬는 시간이면 책상에 걸터 앉다가도 수업 도중에는 그 책상에 엎드리는 꼴을 못 봤다. 그 다음으로는 운동장의 모래바닥을 달리는 김홍중. 음악실에서 목을 쥐어짜내는 김홍중. 방과후 나른한 표정의 김홍중. 성화는 제 머릿속 웃고 떠드는 어린 홍중을 보며 느리게 숨을 내쉬었다. 수학여행과 졸업식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데. 차고 넘치는 동창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던 김홍중은 어쩜 이렇게 또렷할까. 그게 다 애정의 결과물이라 생각하면 몸에 힘이 쭉 빠졌다.

혹시라도 우리가 헤어지게 된다면.

사랑에 절여진 뇌가 하기에는 과분하리만치 흉흉한 생각이다. 그러나 성화는 아주 드물게 홍중과의 결말을 상상해 보고는 했다. 주로 다툼 후에 둘의 사이가 서먹했을 때에. 이 불온한 상상에는 나름의 변명거리도 있었다. 대비하지 못하는 미래는 싫어서. 차분한 대화를 통한 이별을 마주한다면 성화는 어떻게든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었다. 철딱서니 없던 과거의 자신까지 모조리 잊어달라는 듯이. 그래서 담담하고 부드럽게 헤어짐을 고하는 법을 연습했다. 만약 진창에서 구르는게 나을 정도로 서로를 헐뜯게 된다면 지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해 자존심을 챙기고 싶었다. 연습의 결말에 따라 성화의 기분은 이리저리 휘둘렸다. 기이한 평정심과 첨예한 분노 사이를 오락가락 하며 두려움을 잊으려 노력했다. 그래. 사실은 두려워서 그런 것이다. 예방 주사랍시고 독약을 찔러넣는 꼴이다.

성화는 해가 뜨고 나서야 몸을 제대로 뉘였다. 열리는 법이 없는 현관문. 울리지 않는 묵직한 전화기. 가끔 앳된 쪽이 방 밖으로 나와 물과 약을 삼키는 소리. 모든걸 회피하듯 흘려넘기고 나서야 드디어. 천장에 발라진 미색 벽지에는 무늬가 없다. 새 도화지. 한 글자도 쓰이지 않은 노트. 빈 창. 그 깨끗함을 마주했을 때의 막막함이 소파에서 바닥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시한부 연애. 상상 따위가 아니라 반드시 도래할 이별. 그게 어떤 모습일지 적고 그려내야만 한다. 우리가 가장 적게 상처받을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생각해내야만 해. 성화는 와병 생활을 하는 환자처럼 느리게 눈을 꿈뻑였다.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을 두고도 현실감을 잃는 기분이었다.

“형.”

앳된 쪽이 다가왔다. 솨아 하고 물 흐르는 소리가 나나 싶었더니. 세수를 했는지 어린 피부로 덮인 이마와 뺨에서 물방울이 돌돌 흘렀다.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것을 지적하기에, 성화는 다분히 혼곤했다. 이제는 이 꼬맹이 앞에서 믿을만한 어른인 척도 하고 싶지 않아. 성화는 눈만 치켜 떠 앳된 쪽을 마주했다.

“저한테 감기 옮은 거에요?”
“……멀쩡해, 나는.”
“걔는 어제 안 들어왔어요? 거실에 혼자 계시길래.”
“응.”
“어디로 내뺐대.”
“그러게.”

공백을 메우듯 바깥에서 새가 짹짹 울었다. 해가 중천인 듯 그림자가 짧았다. 일요일 이 시간에 깨어있는 것도 오랜만이네. 성화는 저를 둘러싼 모든게 마냥 흐리멍덩했다. 앳된 쪽은 얼굴 위의 물기를 제 손등으로 밀어내듯 닦았다.

“형.”

성화를 부르는 목소리가 어쩐지 결연했다. 표정도 그에 딱 걸맞았다. 눈매에는 힘이 들어갔고, 입매는 하도 꾹 다물려 옆으로 살짝 늘어나있다. 그리고는 다물린 입술을 우물우물, 옅게 너울치듯 움직였다. 홍중이 이실직고를 할 때에 주로 짓는 표정이다. 성화는 어쩐지 그게 그리웠다. 저도 모르는 사이 코가 시큰거리나, 싶었는데.

“형 애인이 저에요?”
“뭐?!”

성화는 끓는 물에 데인 사람처럼 팔짝 뛰어올랐다. 첫 날부터 꽁꽁 숨기느라 그렇게 고생했는데. 제대로 약점이 노려진 터이니 조심성이 있을 리가 없다. 결국 앳된 쪽과 이마를 쾅 맞부딪쳤다. 둘 다 이마를 부여잡고 끙끙 앓았다. 성화의 손바닥에 옮겨붙은 물자욱이 느껴졌다. 앳된 쪽이 한참 깽깽거릴 때, 성화는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쪼끄만게 발랑 까져가지고, 어떻게 그런 상상을 했어? 애써 떵떵거렸다. 저 조그만 애를 파렴치한으로 몰아갈 기세였다. 이러면 나름의 변명도 되고, 창피함도 어느 정도 날아갈 것 같았다. 성화가 걱정했던 대로, 그리고 나이 든 쪽이 단언했던 대로 홍중은 남의 집 옷장을 뒤지는 애는 아닐텐데.

“제가 옷장 안을 보게 됐는데요.”
“아……. 옷장 안 뒤지는 애는 개뿔.”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건 아니었어요.”

그냥 옷장문이 조금 열려있길래 닫으려고 했다가……. 앳된 쪽은 다부지게 부정했지만, 어째 변명하는 사람의 모습 같지는 않았다. 초연해 보이리만치 담담하고, 말끝을 흐렸지만 심지가 박힌 듯 또박또박 말했지. 성화는 이마를 문지르던 손을 넓적하게 펴 얼굴 위를 마구잡이로 문질렀다. 피부는 그새를 못 참고 푸석푸석해졌다.

“그런데요, 형.”

저는 기뻐요. 그 다섯 글자만은 아주 작은 목소리여서, 성화는 제 손을 휙 걷어냈다. 앳된 쪽의 얼굴이 불그죽죽 했다. 열이 가시지 않았다기에는 드러난 팔다리가 뿌연 살구색이었다. 대체 뭐가 기쁘니. 이놈이고 저놈이고 자기는 돌아가면 다 잊어버린다고, 그렇게들 나를 괴롭히는 건가. 성화가 화를 닮은 감정을 삭이는 사이, 앳된 쪽은 뒷짐을 졌다. 등 뒤로 쏙 가려진 손. 그러나 팔은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홍중이 제 손가락을 꾸물대는 모습은 흔치 않다. 성화는 그 팔꿈치를 가만히 지켜봤다. 그리고 아주 먼 이야기를 하듯, 꿈 꾸는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 꼴을 보니까 알겠다. 너 진짜 거짓말을 잘 해.”
“……제가요?”
“나 언제부터 좋아했어?”

앳된 쪽은 켁, 하고 짤막하게 기침했다. 더운지 손부채질을 몇 번 휘적휘적 하다가, 그게 집이 따듯해서가 아닌 제 얼굴이 달아올라서 그렇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딴 곳을 바라봤다. 햇볕이 앳된 쪽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빛을 받고 투명하게 흐려진 속눈썹과 콧대. 성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비장했다. 꼴딱 지새운 새벽과는 천지차이였다. 그 모든 이유가 홍중이었다. 앳된 쪽은 다시금 다물린 입술을 우물댔다. 그리고 찬찬히 토로했다.

“그냥……. 거의 처음 보자마자…….”

저 집에 가면 그 애 생각만 해요. 밥 먹으면 급식판 앞에 두고 전투 모드 되는 그 애 생각 하고. 졸다 보면 수업 시간에는 내내 엎드려 있다가 쉬는 시간에 잠깐 일어나는 그 애 생각 하고. 저도 잘 모르겠어요. 서로 번호 저장한지 얼마 안 됐는데, 매일 창만 띄워놓고 고민해요. 그냥 다른 애들처럼 뭐 하냐고 물어보거나 농담 같은 거라도 하고 싶은데. 그 애가 저를 그닥 재미있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고작 이거 하나로 하루 종일 끙끙 앓는 제가 이해가 안 돼요. 사실 어깨에 팔 두르는 것까지는 해봤는데, 형 기억나요? 형이 저한테 헤드락 걸었잖아요. 저 그때 입으로 심장 뱉을 뻔 했어요. 너무 이상해서. 그렇다고 형 애인 있다고 했을 때에 실망은 안 했어요. 진짜 안 했어요. 그냥 이게 뭔가 싶기는 했는데, 정말 그걸로 끝이에요.

“홍중아.”
“네.”
“너 지금 웃고 있는거 알아?”
“저 안 웃었는데요.”

찰캉찰캉. 도어록이 열렸다. 시체가 걷는 것도 아니고. 나이 든 쪽은 영 몹쓸 몰골을 문틈 새로 삐죽 보였다. 앳된 쪽은 낯간지럽지만 그보다 더 진심인 말을 하는 와중 방해를 받아 적잖게 뿔이 난 듯 했다. 입을 열면 으르릉 소리라도 날 기세다. 성화는 드디어 소파 아래의 장판을 밟았다. 바닥을 딛고 서는 감각이 그새 요원해져 걸음걸이가 휘청였다. 나이 든 쪽은 남은 이틀 동안 줄곧 도망이라도 다닐 셈인지 성화를 피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이 아니고서야 해낼 수 없는 일. 그건 대게 번뜩이는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성화는 다시 잠옷 차림으로 현관에 섰다.

“쌈박질 좀 하고 올게.”

나이 든 쪽이 훌쩍 밀렸다. 홍중이 치근거리면 팔랑대는 몸뚱이여도 뼈만큼은 단단하다. 나이 든 쪽은 위협적으로 휘둘러지는 성화의 팔꿈치를 슬그머니 피했다. 몸이 자꾸만 집 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혀엉. 문 너머로 앳된 쪽이 성화를 불러댔지만, 성화는 제 행동을 되감지 않았다. 현관문이 요란하게 닫히자 윗집인지 아랫집인지, 작고 예민한 개가 깡깡 짖었다.

“죽 안 사왔네?”
“…….”
“어디서 뭐 했는지는 안 궁금해. 우리 언제 헤어졌어?”

멱살이라도 잡아올 기세다. 나이 든 쪽은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을 듯, 갸우뚱거리며 성화를 피해 몸을 젖혔다. 성화는 더이상 제 마음을 간과하지도, 나이 든 쪽의 묵묵함을 견디지도 않을 작정이다. 성화가 겨우 나이 든 쪽을 낚아챘다. 어깨도 팔목도 아닌 팔꿈치가 고작이다. 나이 든 쪽은 더이상 제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얼굴을 단호하게 굳혔다.

“네가 어쩌다 이별을 피해가더라도, 어차피 다시 돌아올 거야. 연애하면 헤어져. 결별이든 이혼이든 사별이든.”
“내가 너 좋다고 이러는 건데. 뭐가 더 필요해?”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나는게 너한테 더 좋을,”
“너 나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다며.”

저 미친 꼬맹이가 진짜! 나이 든 쪽이 소리쳤다. 고함이 복도의 벽면을 이곳저곳 때리며 메아리쳤다. 제 성질머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씨근덕거리기까지 했다. 얼굴에 열이 오르고, 또 퍼지는 것이 성화에게까지 느껴졌다. 느닷없이 침범한 온기에 성화는 대담해졌다. 이제는 우리가 언제 헤어졌는지, 답을 얻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나는 그럼 너한테, 드디어 얻어낸 사랑 아니야?”

그런데 나를 왜 묻어두려고 해?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이라면 아, 그렇구나. 이렇게 어물쩍 넘겨버리는게 네 일이야? 어제 나랑 끌어안고 너는 그렇게 쉽게 울어버렸으면서. 아직까지 그렇게나 나를 좋아한다는 증거잖아. 그런데 너보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게 더 좋을 거라고? 그거 자의식 과잉이야. 너는 너를 너무 미워해. 나도 네가 밉지만, 가끔은 쳐다보기도 싫은데, 그래도 나는 역시 너를 사랑해. 홍중아. 네가 가뭄에 콩 나듯이 사랑한다고 해주는건 불만이어도 날 좋아해준다는게 좋아. 네가 그렇게나 다른 시간으로 떠나서 뻘뻘거리며 일하는 것도 좋아. 네가 네 일을 정말 사랑하는 것 같아서. 네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던지 나는 사랑할 거야. 일을 하지 않아도 사랑할 거고. 빚더미에 앉아서 이 집을 급하게 팔아버리는 일이 생겨도 너를 사랑할 거야. 이 모든게 네가 이뤄낸 거라고. 우리가 헤어진다고? 스스로를 봐. 너는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을 때에도 나를 사랑했잖아. 우리가 연인이 아니어도 내가 너를 사랑할 수도 있는 거라고.

성화의 징그러울만큼 답답하고 좀스러운 연인은 금새 입을 다물었다. 성화는 방금 전까지 애정을 들먹여놓고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꿨다. 너는 참 희한해. 그렇게 똑똑한 애가 왜 이렇게 큰 착각을 하는 걸까. 성화를 향한 길고 긴 애정의 여정 중에도, 과거와 미래를 들쑤시고 다니며 월급과 연말 보너스를 받는 중에도, 깨닫지 못한 것이 있다니.

“네 시간대의 나는, 널 홀라당 까먹고 잘 살 것 같아?”
“…….”
“네가 내 마음의 크기를 얕보고 있는 거야.”

혼란하고 불안하며 두려운 미래일지라도. 우리는 이제 우리가 아닐 수 없어.







월요일


“아침 안 먹을 생각이야?”

아니, 먹어……. 성화가 손을 뻗어 더듬거렸다. 시계를 확인하니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아침은 커녕 물을 대충 끼얹고 몰골을 다듬는게 다일 것 같이 촉박한 시간. 성화가 침대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떨어졌다. 나이 든 쪽을 따라 나가니 식탁에는 눈도 못 뜬 앳된 쪽이 앉아있었다. 홍중‘들’은 어째 머리가 죄다 같은 방향으로 눌려있었다. 성화는 그릇에 시리얼과 우유를 콸콸 붓고는, 무얼 먹어도 체하지 않는 사람처럼 마시듯 씹어삼켰다. 알람도 듣지 못하고 숙면이라니. 간만에 침대에서 잔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착각이 아니라 진정으로 마음이 온건해진 덕분이겠다. 어젯밤 앳된 쪽은 내내 베고 자던 제 몫의 베개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이제는 형이 편하게 자요. 그러고는 얌체처럼 소파를 뺏었다. 긴장이 풀린 덕에 금새 몸이 노곤해진 성화는 쉽게 꾸벅거렸다. 침대에 누워 앳된 쪽의 말대로 살짝 열린 옷장을 졸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거실에서는 일주일 내내 바닥 신세를 지게 생긴 나이 든 쪽이 쉬지 않고 구시렁댔다. 드문드문 들리는 단어로는 제 잠자리 처지와 짝사랑 연대기의 누설로 한창 옥신각신 하는 것 같았다.

“너 빨래. 너 설거지.”

성화가 나이 든 쪽과 앳된 쪽을 번갈아 가리켰다. 허겁지겁 신발을 꿰어 신고는 현관을 나섰다. 등 너머로 앳된 쪽이 잘 다녀오세요, 하고 인사했다. 까딱하면 사람이 지금보다 더 붐빌테고, 출근하느라 진을 다 빼면 하루종일 피곤하고는 했다. 엘리베이터는 아랫층에서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아 계단을 내려갔다. 종종대는 발소리가 층계참에 울렸다.

마실 것도 없이 밀린 일을 해치웠다. 주말을 지난 월요일은 점심 시간이 지나고 나서 식곤증에 허덕일 시간도 주지 않고 바빴다. 딱히 바라지 않는 메뉴로 식사를 하고도 성이 차지 않아 배가 살살 고파질 무렵. 책상 위에 널부러트린 핸드폰이 윙윙 울렸다. 한적한 시간에 울리는 광고 전화 따위인 줄 알았던 성화는 일순 모든 작업을 멈췄다. 그리고 잽싸게 탕비실로 꽁무늬를 뺐다. 홍중의 동기가 걸어온 전화다.

“여보세요.”

그 짧은 거리를 달음박질 했다고 살짝 숨이 찼다. 성화는 들쑥날쑥한 숨을 꾹꾹 누르며 음성을 기다렸다. 잘 계셨나요, 저번에 전화드렸던 김사원 동기입니다. 월요일의 사무원 답게 피로하고 굼뜬 목소리. 성화는 스피커를 제 귀에 찰싹 붙였다.

“지금 김사원은 지내던 숙소에서 체크아웃 하고, 해당 지역 시간교정연합 사무실로 이동중이에요.”
“네. 네.”
“복귀 시스템도 정비가 끝났습니다. 월요일에서 화요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자택으로 복귀 예정입니다. 이번에는 문제 없을거에요.”
“수요일이 아니라요?”
“다행이 빨리 복구가 됐더라고요.”

연인은 예정된 일주일을 꽉 채우지 않고 돌아온다. 성화는 한순간에 너무 많은 감정을 받아들였다. 그렇게나 보고 싶어했던 홍중이 드디어 집으로. 다툰 후 연락 한 통 없이 어제 하루 소식불통이었던 그놈이 집으로. 언제든 이별을 통보하던 받아들이던 할 바보가. 드디어 집에 온다. 그러면 지금 집에 있는 홍중‘들’은 홍중이 돌아오며 자신의 시간대로 돌아가겠지.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고백까지 한참이나 시간을 들이기도 할 것이고, 자책으로 밥을 지어 하루하루 빈 속에 쑤셔넣기도 할 것이다. 자신과 성화가 겪어온 모든 사건들을 답습하기도, 반추하기도 하면서. 기뻐해야 할지, 아쉬워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성화가 대꾸하지 않자 홍중의 동기는 다시금 사고 이후 보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 통화에서 들었던 것보다 한층 상세했다. 성화는 연거푸, 여태 그래왔던 대로 네 소리만을 반복했다.

“갑자기 당 떨어지든?”

성화의 입사 동기가 한껏 샐쭉거렸다. 성화는 멍한 얼굴로 제 자리를 찾아갔다. 다시 바삐 움직이지 않고 멍하니 창을 들여다보자, 입사 동기는 종알종알 떠들어댔다. 그거 다 나이 먹어서 그런 거래. 봐봐. 어르신들 졸린건 어거지로 참아도 배고픈건 못 참지 않냐? 그게 다 당이 갑자기 떨어져서란다. 무서워 죽겠네, 진짜. 얘는 어디다 정신을 빼놓고 있는 거야.

“화분 봤어?”
“아니.”

성화는 그제야 제 화분에 눈길을 줬다. 흙이 퍼석하게 말라있었다. 안은 아직 축축할 수 있으니 차마 넘겨짚을 수는 없지만, 이파리는 과습으로 무르지 않고 파릇파릇했다. 그새 자랐나. 성화가 실눈을 뜬 채, 의자를 돌돌 굴려 화분으로 다가갔다.

“꽃대 올라왔더라.”
“좀 있으면 추워지는데?”
“원래 볕 들고 따듯하면 계절도 모르고 핀대.”

성화는 아직 연초록인, 순하고 여린 꽃대를 유심히 보았다. 머잖아 저 끄트머리에서는 질색할 만큼 새빨간 작은 꽃이 필 것이다. 성화는 미래가 두려워서, 하고 토로한 며칠 전의 자신을 상기했다. 어제 하루가 참 극적이었다 한들 두려움은 떨쳐진 적이 없다. 저 화분만 해도 날이 더 추워지면 깡깡 얼 수도 있을 노릇이고, 아니면 또 물을 왈칵 줘버리는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겠다. 성화는 다시 제 책상으로 돌아와 시계를 멈춰놓은 듯 정지한 화면을 응시했다. 미룰 수 없는 일만 하자.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오늘의 계획을 세워야지. 그 사이 입사 동기는 성화를 몇 번이고 흘끔거렸다. 남들이 보기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변덕인 듯 했다.

성화는 남몰래 차근차근 제 가방을 정돈했다. 발을 바닥에 딱 붙이고 앉아서, 언제든 튀어오를 준비도 든든히 해뒀다. 그러다 보니 이게 앉아있는 것인지 서있는 것인지 영 애매한 상태로 한참을 있게 됐다. 퇴근합시다. 파티션 너머로 반가운 소리가 들리자마자, 성화는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섰다. 진작 모든 짐을 넣어두고 잘 닫아둔 가방을 품에 안았다. 사무실을 나서며 연거푸 목례를 했는데, 스스로 생각해도 아주 어수선한 모양새였다. 회사를 빠져나온 이후로부터는 뜀박질에 가까운 속도였다. 녹색 원피스를 입고 있던 여자는 이제 감색 스웨터 차림이었다. 성화는 제 앞으로 들이밀어지는 전단지에 대고 죄송합니다, 하며 흘려말했다. 가장 빨리 오는 급행을 타야했다. 끼이고 치이고 발이 밟히는 한이 있더라도.

역시 야채는 빼고. 육류. 생선. 달걀. 기분이다 싶어서 과일 몇 개. 과자도 몇 개. 요거트는 또 잔뜩. 성화가 달렸다. 봉투는 커진 몸집만큼 무거워 팔이 아팠다. 이렇게 엉성하게 달리다가는 넘어질 것 같았고, 또 숨이 할딱할딱 차올랐다. 밤 아홉 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성화는 가슴팍이 타오르듯 뜨거워지면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도중에는 크게 휘청여 발목을 접지르거나 품 안에 든 것들을 모조리 쏟아버릴 뻔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나 걸을 수도 없었고, 마음을 다잡을 시간도 모자랐다. 홍중‘들’에게 이곳은 미래의 집과 과거의 집. 무어든 먹이고 보내고 싶었다. 그들이 모조리 잊어버린다 한들 네가 이곳에 있을 것이고 네가 이곳에 있었음을 기념하고 싶었다. 도어록을 누르는 손이 몇 번이고 빗나갔다. 제 맘 같지 않아 짜증이 픽 터져버릴 것 같은 때. 홍중‘들’은 안쪽에서부터 문을 열었다. 성화는 그제야 봉투를 꾹 끌어안고, 근 일주일 내 가장 편안히 웃었다. 손 씻어, 집밥 해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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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늦은 아침. 식탁 위로 전화기가 놓인다. 나이 든 쪽은 망설임 없이 번호를 누른다. 앳된 쪽은 아직도 자신이 정말 저런 성가신 어른이 된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다. 나이 든 쪽은 이쪽도 저쪽도 자신의 옛 모습인 것이 영 달갑지 않다. 수신음이 길게 이어지는 듯 하다, 중간을 뚝 끊어먹듯 멈춘다. 수화기 너머 홍중은 재차 성화를 부른다. 애가 탄 것은 성화 뿐만이 아닌지, 아니면 똑같이 애끓는 주제에 호들갑인지. 나이 든 쪽은 심드렁하게 턱을 괸다. 앳된 쪽은 또박또박 따진다. 형은 출근했거든? 어디 한 번 우리끼리 얘기를 해보자고.

앳된 쪽은 지금의 홍중이 싫다. 감히, 라는 말을 남발한다. 오로지 성화와 다퉜다는 단순명료한 이유다. 유치원에 다닐 적 멋모르고 뽀뽀 받고 뽀뽀 받던, 어른들에게 휘말린 장난 같은 짓 말고. 처음인 데다가 본격적으로 짝사랑을 시작한 머리는 지금의 홍중을 이해하지 못한다. 모조리 네 잘 못. 네가 잘못하지 않았어도 네 잘못. 버릇 없이 힐난한다. 앳된 쪽의 두서없는 분노가 사그라들 즈음에 나이 든 쪽이 가세한다. 앳된 쪽처럼 열을 내지는 않는다. 최대한 간결하게 말한다. 사랑은 혼자 하는게 아니야. 앳된 쪽은 소름이 돋았다는 양 제 팔을 벅벅 문지른다. 나이 든 쪽은 손쉽게 자극당하고 만다. 난데없이 자신‘들’에게 혼나느라 넋이 나간 홍중은 곧 제 뒷목을 부여잡는다. 나이 든 쪽의 고자질 덕분이다. 쟤가 다 말했어, 첫눈에 반했다고. 셋이, 아니면 이 대 일로. 엉겨붙어 싸운다. 고성이 마구잡이로 오간다. 먼저 꼬리를 내린 것은 홍중이다. 사무실로 가는 택시 안. 기사가 수화기 바깥으로 넘실대는 악다구니에 대번 인상을 쓴 탓이다. 홍중은 기도하듯 작고 빠르게 속삭인다. 닥쳐. 제발 닥쳐.

홍중은 앳된 쪽을 겨눈다. 너야말로 잘 해. 차일피일 고백 미루다 다른 사람한테 선수 뺏길 뻔 했어. 평소에도 살갑게 굴어서 점수 따놓으면 되는걸. 굳이 뱅뱅 돌리고 돌려서 틱틱대고, 짜증내고, 선 넘었나 싶으면 하루종일 초조해 할거면서. 앳된 쪽이 보기 좋게 나동그라진다. 정곡을 제대로 찌른 덕이다. 미래의 나 아니랄까봐. 돌아서면 아쉬웠던 점을 요목조목 들먹인다. 나이 든 쪽은 코웃음 친다. 홍중이 대체 누구 앞에서 어른인 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나도 아직 어른이 못 됐는데. 아마 너는 평생 어른이 되지 못할 것이다. 되도 않는 고집을 부리거나 이상한 곳에서 매정해 그 애를 속상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어른의 연애는 하고 싶지 않다. 배려 같은 말로 겉멋만 잔뜩 들이는 그런 것 말이다. 평생을 애로 살아도 솔직하고 싶다. 그것이 평생의 숙제이자 목적이다. 나이 든 쪽은 이 수많은 문장을 압축할 수 없어 함구한다. 다시 미래로 돌아간 후 숨만 겨우 붙어 산다고 한들. 그렇게 나이 든 쪽은 통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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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려운 부탁 했어?”

성화는 한밤중에 창문을 열었다. 검댕에서나 날법한 매캐한 냄새는 걷어내는 것도 일이다. 마지막으로 멋진 식사를 함께 만들고 싶었는데. 벅차오른 나머지 사고회로 어딘가가 고장난 모양이었다. 홍중은 요리에 재능이 없다. 성화는 그걸 새카맣게 잊어버렸고. 홍중‘들’은 처음으로 본 의욕 넘치는 성화에게 휘말려 이리저리 움직였다. 팬에 기름도 안 둘러. 칼질을 위험천만하게 해. 달걀도 못 깨. 성화는 세 명이서 전력으로 어지른 부엌을 보며 망연자실해 했다. 앳된 쪽은 바닥만 쳐다봤고, 나이 든 쪽은 어쩐지 멍청한 자세로 서있었다. 타거나 덜 익은 부분을 도려내고 나니 양은 터무니 없이 적었고, 모양은 엉망이었다. 조금 남으면 집에 돌아올 홍중에게 나누어 줄 생각이었는데. 이 상태로는 웰컴 드링크로 요거트만 내놓아야 할 판국이다.

“앉아. 앉아서 다 먹어.”

셋은 허공을 올려다 보며 입 안에 든 것을 질겅질겅 씹었다. 성화의 수저질이 점점 느려졌다. 첫 술은 먹을만 한가, 싶었다. 그런데 씹다보니 영……. 아무리 씹어도 부드러워지지 않는 덩어리를 삼키며 골똘히 생각했다. 누가 최초의 시간여행을 했을까? 언젠가 홍중이 일러준 적이 있었으나 식사 시간에 어울릴만한 생각은 아니다. 홍중‘들’은 서로 다른 모양으로, 그러나 똑같이 의자에 걸쳐지듯 퍼져있었다. 수저는 식탁 위에 놓인 뒤 움직이지 않게 된지 한참이었다. 너네 배부르다는 소리 하지마. 성화에게서 물렁했던 미소는 싹 사라지고, 눈앞의 홍중‘들’에게 마냥 강경하게 굴고 싶었다. 그래도 저 아무 흥미도 못 느끼겠다는 얼굴을 보면, 차려진 것들이 죄다 쓰레기통에 들어가겠다는 아까움은 슬그머니 사라진다. 더 먹였다가는 분명히 체한다는 걱정이 앞설 뿐이라서, 결국 그만 먹자는 소리를 했다. 홍중‘들’은 눈에 띄이도록 안도했고, 성화는 철저하게 진 기분이었다. 그래도 어찌저찌 다 먹을 수는 있을 줄 알았는데, 스스로에 대한 실망 덕분이다.

함께 부엌을 치우다 보니 자정이 곧이었다. 요리도 지지부진했건만 좁은 부엌에 셋이 뒤얽히자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더라. 물을 틀어놓고 있으면 찬장을 열어야 했고, 식기를 나르다 보면 냉장고를 채워넣어야 했다. 멋진 식사는 완벽히 물 건너가고 때 이른 피로가 찾아왔다. 한주의 시작이 뒤숭숭한 셈이라, 성화는 겨우 정돈된―그러나 제 성에는 차지 않는―부엌을 보며 끙끙 앓았다. 설거지와 청소가 일단락된 뒤에도 탄내는 빠지지 않아서 온 집안에 한기가 돌았다. 서너 차례나 닦은 식탁. 앳된 쪽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들떠보였다. 얌전하고 단정하게 앉아있지만 씰룩이는 입꼬리만큼은 숨길 수 없다. 성화가 물었다. 오로지 짖궂은 의도에서다.

“나 만나러 갈 생각하니까 기뻐?”
“네.”

꼬맹이의 즉답에 어른들은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나이 든 쪽과 성화가 횡설수설했다. 헛소리가 심하네, 아직도 열 안 내렸어? 얘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벌써부터 그렇게 느끼해서 어쩌려고 그러냐? 앳된 쪽은 진즉 파스텔색 공상에 빠져버린터라, 어른들의 만류에도 뭉글뭉글한 소리를 잘도 했다. 화요일에 자리 바꾸거든요. 성화가 저보다 앞줄에 앉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수업 중에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되니까. 성화는 식탁에 장렬히 엎드리고 말았다. 쪼끄만게 어른을 가지고 노나 싶었다. 그래놓고 정작 나를 마주하면 낯간지러운 말은 한 마디도 못할 거면서. 입만 살아서. 이런건 대체 어디에서 배워서. 성화가 굴 밖을 살피는 소동물처럼 고개를 들었을 때, 나이 든 쪽은 앳된 쪽을 한 대 쥐어박기라도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식탁 아래로 가지런히 놓인 발을 콱 밟았다. 나이 든 쪽이 소리 없이 비명을 삼켰다. 성화가 기억하기로, 홍중은 학창시절 내내 단 한 번도 성화보다 뒷줄에 앉은 적이 없었다. 일러줘봤자 실은 없지만 득도 없다. 실컷 좋은 상상을 하라지.

성화는 식탁 가장자리를 바라보았다. 언제 누가 왜 옮겼는지, 발코니에 방치되어 있던 전화기는 성화가 집에 돌아왔을 무렵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다이얼 위쪽, 수발신을 할 때마다 깜빡이는 작은 램프들에 불이 들어왔다. 자정까지 앞으로 일 분. 램프들은 초를 세듯 일정한 간격으로 점멸을 반복했다.

“펜 좀 빌려줄래?”

갑자기? 그것도 지금 와서? 성화는 분주히 움직였다. 냉장고에 메모를 남겨두는 용도로 쓰던 수성 사인펜이 가장 가까웠다. 허겁지겁 건네자 나이 든 쪽은 제 왼손을 쫙 펼치고는, 무어라 조잡하게 쓰기 시작했다. 앳된 쪽은 성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무시할 수 없어 기꺼이 눈을 맞춰주었다. 앳된 쪽은 제 뺨을 혈색 좋게 물들이고 있었다. 처음 홍중을 마주했을 때의 그 모습 그대로의 얼굴을 하고는,

“형, 미래에서 만나요. 멋진 사람이 될테니까.”

전화기의 램프들이 빠르게 깜빡였다. 자정까지 앞으로 수 초. 성화는 앳된 쪽의 맹랑한 말에 파하학 웃음을 터트릴 뻔 하다, 이내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사람처럼 헛숨을 삼키고 말았다. 나이 든 쪽의 왼손바닥. 구부정한 글씨는 말하고 있었다. 이걸 보는 즉시, 박성화를 만나러 갈 것. 성화는 오늘 저녁 내내 오로지 한 마디만을 연습했다. 홍중아, 나는 너를 언제든 사랑해. 입술이 벅차게 떨어졌다. 홍중아. 그 소리에 홍중‘들’이 성화를 바라본다. 그리고 꿈처럼 사라졌다.

성화는 사선으로 놓인 수성 사인펜을 가만히 내려보았다. 홍중이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미래를 바꾸었다면, 홍중의 미래를 바꾼 것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것이. 그 사실이 성화를 한순간 운명론자로 만들고 만다. 우리는 먼 시간 후에도, 아니면 태어나지 않았을 때부터, 어쩌면 서로를 찾아 온갖 시공을 헤메다가 만났을 터이고, 그것은 운명이나 기적이라는 말 이외로 설명할 수 없으니까. 성화는 식탁에서 일어난다. 의자를 밀어넣는다. 익숙한 기척이 등 뒤에서 느껴진다. 가슴이 뛰는 소리가 귓전을 때리고 부수듯 울린다.







화요일


사랑해.

장장 보름하고도 엿새 더. 홍중은 사죄하듯 고백한다. 성화의 품에 뛰어들듯 안긴다. 사정을 봐주지 않고, 둥그렇게 원을 그린 팔에 힘을 준다. 성화는 허리께가 졸려 멋 없는 비명을 지른다. 품 안의 홍중이 이제 막 빛을 본 갓난아기처럼 운다. 오밤중 졸린 눈을 한 이웃들이 기겁을 하게끔 운다. 눈물을 감정의 무게로 환산하는 짓은 되먹지 못한 일이나, 성화는 그 엉망진창인 울음에, 이제야 이곳이 정말 집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홍중이 떠나간 그 날의 풍경 그대로다. 드디어 둘 다 도착했다. 성화는 홍중을 흉내내듯 팔을 벌린다. 우리들만이 세상에서 제일 값지다는 듯 포옹한다. 그리고 과거를 확신하며 미래를 긍정한다. 응, 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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