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중성화] 생의 한가운데 上 - ichigo


화요일


삼시세끼 따듯한 밥은 이상적이다. 이상적이니 모두 우러러 들 본다. 그러니 잘 사는 모습에는 배곯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지. 식사는 중요한 거야. 우리는 먹고 사는 존재들이니까. 옛날 옛적부터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 둥 찬밥 더운밥 안 가린다는 둥 밥이 약보다 낫다는 둥. 끼니란 다음에는 무얼 입에 넣을지 고민하게 될 만큼 찬이 많아도 좋고, 희소성이 그득하도록 특출나게 맛있는 메뉴 하나를 우직하게 먹는 것도 좋다. 혀가 얼얼하리만치 자극적이거나 조리하는 데에 오 분도 안 걸리는 패스트푸드. 그리고 그간 혹사당한 위장에게 사죄하듯 밀어 넣는 파릇하고 신선한 식재료들. 마실 거리와 군것질거리도 함께하면 딱 좋겠다. 과일이나 우유는 건강한 맛이 있고 초콜릿 범벅인 과자나 알코올은 내일이 두려워도 맛있는 법.

날짜 변경선을 건너간 홍중은 이곳과 반대의 계절을 겪고 있다. 삽시간에 벌어진 물리적 거리. 그러나 심리적 거리마저 줄일 수는 없다. 홍중에게서는 매일 같이 전화가 왔다. 성화의 시간으로는 밤 열 시, 홍중의 시간으로는 오전 아홉 시. 통화의 길이는 대체로 이십 분. 가끔 운이 좋으면 삼십 분을 넘기는 대화는 무전기를 닮은 전화기로 이루어진다. 한 손으로 들고 있자면 손목이 뻐근해지는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그 애의 목소리. 성화는 통화 내내 자주 웃었다. 멀어져 있으니 더 애틋해진 것이라고 흔히들 착각할 수 있겠으나, 성화는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이랬다. 홍중의 목소리에는 보이지 않는, 부드러운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 애. 둘은 사춘기 끝물인 열여덟의 한복판에서 맞닥트렸다. ‘야’라던지 '너'라던지 ‘김홍중’ 이외의 말로는 부르지 않았는데―물론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거칠고 투박한 말도 꽤나 잦았다―이제는 ‘너’ 아니면 ‘홍중아’. 매일 속으로 그 애를 ‘그 애’라고 부르는 것은 이제는 점잖아야 한다는 불문율이라던가, 서른을 앞둔 만큼 유들유들해진 성격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나이를 더 먹었을 때에는 그 애를 ‘애’라는 말을 넣어 가리킬 수 없을지 몰라도, 연인이니까. 사랑을 주고받는 사이니까. 그래서 자나 깨나 걱정뿐이니까. 그런고로 홍중이 잘 지내는지 궁금해질 때, 그걸 가장 빠르고 든든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끼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건강과 윤택함 너머의 홍중을 보는 일. 성화가 물었다. 오늘은 밥 잘 챙겨 먹었어?

“나 오늘 지각할 뻔했다.”
“왜 말을 돌려?”
“말을 돌린 게 아니라 이 말을 하고 싶었어서 그런거야.”
“그래서 밥은?”

홍중은 대답이 없다. 성화는 일부러 ‘김홍중’ 하며 이름 석 자를 꾹 채워 불렀다. 성을 붙여 이름을 부르는 꼼수. 이전에는 줄기차게 불러왔던 호칭은 연애를 하며 터득한 편법 중 하나가 되었다.

“나 오늘 지각할 뻔했다니까. 밥을 먹을 시간이 없었어.”

홍중은 곧장 실토하며 꼬리를 내린다. 그 어미는 유들유들하게 늘어나 있다. 면대면일 때에만 통할 줄 알았는데 유선상으로도 먹혀드는 작전이구나. 홍중은 이렇게 정 없이 불려질 때면, 눈은 모서리로 향하고 입술은 비뚜름해져서 입맛을 다셨다. 눈에 선해야 하는데. 성화는 그 얼굴이 어쩐지 가물가물했다.

내 집이 아니라 우리 집. 우리가 몸을 녹이고 등을 뉘이는 집. 어쩌다 다퉈서 서로 머리꼭지만 봐도 화가 나고,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모를 때에도 얼굴을 마주 봐야만 하는 그런 집. 그러나 생각보다 마주 보는 시간은 많지 않다. 둘 다 아침 일찍 출근해. 각자 잔업이라도 떠맡게 된다면 퇴근 시간도 제각각이다. 그런고로 평일에는 오밤중 아니면 꼭두새벽에야 마주친다. 주말에는 둘 다 주중의 피로 덕에 늦은 오후까지 내리 잠들곤 했다. 그러다 보니 서로가 즐거워 못 견디는 데이트도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그게 다 애정이야. 식습관은 물론이고 생활 방식이며 하루의 계획과 목표도 다 다른 서로가 애정으로 뭉치는 이 집. 각자 스스로를 쥐어 짜내 구한 귀하디귀한 둘의 전셋집―성화가 얼마 타지도 않은 차를 팔아 돈을 보탰을 때, 홍중은 그게 어지간히 미안했는지 한참 훌쩍거렸다―은 결코 이 사랑의 종착지가 아닐 것이다. 홍중과 성화는 집을 이 연애사의 거대한 이정표로 여기고 있으니까. 동시에 서로가 남 부럽지 않게 잘 먹고 잘 자며 잘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고.

성화는 전화기를 설설 긁었다. 흠집 하나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차갑고 단단한 표면에 마찰음이 맺혔다. 홍중이 이 전화기를 막 집에 가져온 날. 홍중은 칼이나 가위를 찾을 생각도 못 한 듯 다급하게 포장을 풀고는 전화기를 자랑했다. 성화는 그 전화기를 한 번 들어보고는 아령이 따로 없다며 질겁했다. 홍중은 성화를 앉혀두고는, 뒤이어 자신도 성화의 옆에 찰싹 붙어 앉아 설명했다. 이건 초끈합금이라는 소재로 만들었어. 아직 어디에서도 발표되지 않은 소재인데, 밀도가 높아서 웬만한 금속보다 무겁대. 그래도 덕분에 아주 멀리서도 신호를 받을 수 있어. 내가 미래에 가 있든, 과거에 가 있든. 그래서…….

홍중은 지금 삐삐를 들고 다닌다. 최신형 아이폰은 침실에 두고 갔다.

사실 하루의 절반 하고도 오 년을 더해야 한다.

“변명 금지야.”
“진짜라니까…….”

그리고 여기 먹을만한 게 없어. 하나 같이 너무 짜. 한 입 먹을 때마다 물로 혀를 씻어야 돼. 그런데 여기는 식당에서 물을 마시려면, 돈 주고 사 마셔야 해. 나 안 그래도 예산이 간당간당하단 말이야. 홍중은 성화의 신경을 긁지 않으려는 듯, 사근사근 불평했다. 불평보다는 투정에 가깝다. 투덜대는 내용이다만 아무도 찌르지 못할 만큼 둥그렇고, 문장의 높낮이에는 답지 않은 애교가 섞여 들쑥날쑥했다. 성화는 괜스레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그래. 이 이상으로 넘어가면 귀 따가운 잔소리지. 성화는 이만 하면 식사 이야기는 끝내도 되겠다 판단했다.

“얼른 왔으면 좋겠다.”

성화 역시 칭얼거리고 싶었다. 현지식에 대고 투정을 부리는 홍중을 따라 하듯이. 다 큰 어른이 어디 가서 칭얼거리겠어, 애인한테나 하지. 네 출장은 너무 길어. 아침에 눈 뜨면 머리카락이 다 뒤집어진 네가 없고. 저녁에 돌아오면 집에 모든 불이 다 꺼져있고. 그렇다고 밤까지 기다려도 현관문은 열리지가 않아서 너무 적적해. 주말에는 늦은 오후까지 뒤척이면서 끌어안을 몸이 없는 것도 쓸쓸해. 그렇다고 한들 가슴 한복판이 허할 때마다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성화는 슬슬 제가 뱉은 말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홍중이 어쩔 도리가 없는 출장. 지금 이 시간을 묵묵하게 버텨내며 그 애를 안심시킬 수 없던 것에 대한 미안함. 그 덕에 느껴지는 책임감. 성화는 간신히 마음을 다잡았다. 현장 교정 조합원의 가족들은 다 이렇다고 했으니까.

홍중은 시간 여행을 한다. 쉽게 말해 여행이지. 근무와 보수가 함께 하는 출장일 뿐인걸. 홍중이 몸담은 시간교정연합은 세간에 전화국으로 위장되어 있으나, 사원들은 대체로 이러한 일을 한다. 반드시 일어나야 할 일을 일어나게 만들기. 반드시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을 일어나지 않게 만들기. 커다란 흐름을 지배하는 일은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고는 한다. 잃어버린 머리끈을 찾아주거나, 최악의 데이트를 한다거나, 일기를 하루 빠트리고 쓰게 만든다거나, 정말 아무래도 좋을 법한 일들 말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 근본부터 차근차근. 성화는 홍중이 지긋지긋한 교복 차림을 했을 때를 떠올렸다. 나는 그 애가 자라서 공무원이나 대기업 예스맨이 될 줄 알았는데. 어쩌다 이런 비밀스런 영웅님 또는 피로 누적 첩보원 같은 일을 하게 되었지?

재작년이었지. 성화는 새내기 직장인으로서 매일 같이 허둥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막 취업한 홍중은 송년회에 참석해야 했다. 홍중은 다른 직원들이 송년회에 아주 친밀한 가족이나 애인을 데려오는 걸 파악했다. 그래서 성화에게 도움을 청했다. 송년회 당일, 성화는 하도 긴장한 덕에 하루종일 거울 앞을 오가며 치장했다. 우리 회사 송년회는 돼지갈비만 구워 먹고 끝이었는데. 전혀 다른 사풍과 전혀 다른 사람들. 연인의 사회생활. 그게 마냥 부담스러웠으나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었다. 홍중은 성화에게 무리하지 않아도 좋다고 했지만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을 수는 없었다. 나 좋자고 이러는 거야? 너 좋자고 그러는 거지. 성화는 불안함을 씻어낼 요량으로 큰소리쳤으나 결국 머리를 다시 감아버렸다.

홍중은 먼발치에서만 사람들을 소개했다. 저 사람은 자신과 같은 현장직. 저 사람은 사무직. 저 사람은 인사과의 누구누구. 성화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바보, 낯가리는 건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구나. 그래서 성화가 먼저 움직였다. 성화는 하나 둘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행히도 던져진 호의가 무시당하지는 않았다. 기특하게도, 홍중은 붙들려 온 사람들에게 성화를 이렇게 소개했다. 제 애인이에요. 홍중은 애인이라는 단어를 내뱉을 때마다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성화의 눈에는 그게 마냥 귀여웠다. 입꼬리가 자꾸 위로 치솟는 걸 억지로 끌어당기느라 용쓰다니. 콩깍지의 힘이었다.

성화의 시도는 좋았으나 상대들은 어디까지나 애인의 직장 동료들. 아무리 호기롭게 다가갔다 한들 넉살 좋게 대화를 주도하기는 어려웠다. 삽시간에 기세가 역전되었다. 홍중과 성화는 그들의 시시콜콜한 질문―둘이 교제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혹은 언제부터 알고 지냈느냐, 와 같은 것이 일 순위였고 그다음은 성화의 직업에 관한 이야기였다―에 이리저리 치였다. 성화는 최대한 매끄럽게 답하려고 노력했고, 싹싹한 태도는 곧잘 먹혀들었다. 한 건 해냈다. 성화가 티 나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를 동반하는 송년회. 홍중의 직장 동료들 역시 누군가를 대동한 상태였다. 그 동반인들은 자리를 뜰 때마다 하나 같이 성화를 보고는, 입술을 삐죽이고 눈은 옆으로 흘겼다. 그러나 결코 제 옆의 상대를 미워할 수는 없다는 듯이 말했다. 성화씨도 앞으로 많이 외롭겠어요.

그렇네. 정말 외롭네. 수화기 너머 홍중은 말이 없다. 분명 미안해하고 있겠지. 그래서 성화는,

“잔소리할 사람 없어서 심심해.”

하고 가볍게 흘려들으라는 듯, 부러 밝게 이야기한다.

"하루만 기다려 줘."

성화는 제 투정이 부끄러워 참을 수 없게 됐다. 말라버린 손바닥으로 볼을 문질러댔다. 알지. 나도 알아. 너 여기에 오기까지 스물네 시간도 안 남았지.

홍중은 굿나잇, 성화는 굿모닝. 서로 가진 전화기의 수화기에 짤막한 키스를 불어넣었다. 성화는 오늘 그 애의 점심식사가 조금 다르기를 빌었다. 어디서 무얼 먹든. 그 식사의 양과 질이 얼마나 가볍든 아니면 무겁든. 그 무엇도 집에서 먹는 것보다는 못하겠으나.







수요일


“기운이 좋으세요.”

녹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생긋 웃었다. 손에는 빳빳한 종이 여러 장이 들려있다. 목가적인 풍경 위로 빼곡하게 인쇄된 글씨가 가득했다. 그녀는 종이 뭉치의 제일 위에 올려진 한 장을 내밀었다. 모두가 데친 채소처럼 흐물대며 역으로 걸어가는 시간. 왜 하필 퇴근하는 길목에 서 있나. 여기 화방이 있나요, 혹시 우리 어디에서 본 적이 있나요, 따위의 상투적인 물음이 없는 돌직구가 대단했다. 그런고로 다들 그녀를 무시하고 지나쳤을 것이나, 성화는 기꺼이 응수했다.

“네, 오늘 좀 좋은 것 같네요.”

대답 뒤에 머쓱한 웃음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여자의 뒤따르는 말을 들어줄 시간은 없지. 성화는 종이를 손에 쥔 뒤 목례를 건네고, 상류에서 하류로 흘러가듯 역으로 향했다. 보폭이 황새처럼 길쭉했다. 구호선을 탄 뒤 환승해야 하는 귀갓길은 늘 미어터졌다. 각지의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그렇게나 급행을 고집했다. 부대끼고 밀쳐져도 빨리 빨리. 성화는 그 혼잡함이 싫어 부러 일반 열차를 고집했다. 느릿느릿 기어가는 일반 열차. 쪽잠으로 시간을 죽이다 집에 오면 저녁이라기엔 너무 늦고, 밤이라기에는 미묘하게 이른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급행을 타야 해. 성화에게는 이유 있는 자신감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맞아. 오늘은 좋은 날이야. 뭘 해도 될 것 같아.

성화의 운. 어쩌다 별자리 운세를 확인하는 날마다 두 자릿수의 등수를 면치 못했다. 가위바위보는 줄줄이 졌다. 크지만 가벼운 꿈으로 긁은 복권은 최소 금액에도 당첨된 적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달라. 지난밤부터 느낌이 심상찮았다. 꿈도 꾸지 않고 푹 잔건 오랜만이었다. 깊게 잔 덕인지 기상도 너끈히 해냈다. 시리얼 대신 어엿한 아침밥을 해 먹을 시간이 났다. 밥솥에 물을 딱 좋게 넣었고, 하필 프라이팬 위로 깨트린 달걀의 노른자는 두 개네. 출근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제 잘못을 미루는 데에 선수인 선임은 외근을 나간다며 일찍 내뺐고, 매일 찬이 달라지는 회사 앞 백반집에서는 색색깔의 전이 나왔다. 여기 전이 진짜 맛있는 거라니까요. 성화가 우물대며 말하니 팀원들이 제 몫의 전을 몰아주더라―성화는 이 대목에서 자동 복권 만 원어치를 구매했다―때마침 여행을 마치고 복귀한 동료에게는 술이 들어간 초콜릿을 받았다. 잠들기 전에 야금야금 까먹으면 딱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성화는 겁도 없이 급행열차를 탔다. 오늘은 하지 않던 짓을 해도 지긋지긋한 악운에게 용서받을 수 있을 테다. 빠르게 집에 가야 했다. 장을 보고 다시 돌아오는 데에도 시간이 드니까. 때맞춰 급행열차가 들어왔다. 그동안 엄두도 못 냈던 급행은 유달리 쾌적하게 느껴졌다. 밀쳐지지도, 눌리지도 않는 사이 어깨가 붕붕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보름. 성화는 이 보름을 여러 가지 모습으로 셀 수 있다. 직장인의 입장으로서는 해방감보다 피로가 앞서는 주말을 두 번 맞는 시간. 이따금 달구경을 하는 입장에서는 보름달이 그믐달로 슬그머니 기우는 시간. 타지의 연인을 둔 입장에서는, 알게 모르게 시무룩한 날로 점철되는 길디긴 시간. 출장 초반에는 홀가분했다. 둘이 몸을 뉘일 때보다 집도 깔끔하고. 혼자 무얼 먹어도 한 입만, 하며 뺏어 먹는 사람이 없고―아무리 애인이라도 '한 입만'은 얄밉다―볼 꼴 못 볼 꼴 다 본 사이에서도 차마 내비치기 추레한 모습으로 있어도 됐다. 그런데 그것도 고작 이틀이지. 열흘 하고도 사흘 더. 그동안은 빈말로도 너 없어서 살맛 난다는 말이 나오지를 않더라. 가만히 있자면 샐쭉한 얼굴이 머릿속을 둥실둥실. 홍중은 지금처럼 길디긴 출장을 처음 나갔다 돌아온 날. 무사히 돌아온 홍중을 본 성화는 무심결에 눈물을 쏟을 뻔했다. 그래서 그날 잠자리에 들어서는 답잖게 굴었다. 옆에서 조금만 뒤척여도 잠에서 깨면서, 홍중의 옆구리에 떡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성화는 괜히 홍중의 가슴팍을 톡톡 건드리며 중얼거렸다. 네 생각 많이 나더라.

‘언제?’
‘밥 먹을 때.’
‘돼지야.’
‘너 그러다 죽어, 진짜로.’

무탈하게 살아서 온 걸 기뻐했더니 왜 죽도록 때리고 싶게 만들어? 가슴팍을 건드리던 손이 홍중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홍중이 아닌 밤중에 비명을 질러댔다. 홍중은 모를 테다. 집에서 혼자 하는 식사가 얼마나 서러웠는지. 너 한 입이 아니라 두 입 세 입도 나눠줄 수 있는데. 너야말로 밥 먹을 때에 내 생각 해본 적 있어? 얄미워 죽겠어. 성화는 기어이 꼬집었던 자리를 손바닥으로 맵게 때렸다.

이번 보름 역시 홍중 없이 하는 식사는 재미없었지. 성화는 구호선에서 내리자마자 걸음을 재촉했다. 정강이가 당기지 않는 건지, 아니면 당기는 것도 모르는 건지. 동네 어귀의 마트에 도착하자마자 식재를 쓸어 담듯 끌어모았다. 야채 빼고. 육류. 생선. 달걀. 요거트 잔뜩. 너랑 같이 먹어야지. 종량제 봉투 안에 식자재를 그득 담았다. 집까지 걸어가는 길. 성화는 제법 묵직한 봉투를 손가락에 걸고 걷다가, 아예 품에 안고 달렸다. 넘어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오늘은 운이 좋은 것 같아서. 수십 번도 되뇌인 오늘의 직감이라고만 설명할 수는 없었다. 드디어. 드디어 홍중을 만나니까. 미워도 얄미워도 평생 마주 보고 싶은 사람이 드디어 눈앞에 나타나니까.

어째 숨이 차지도 않는 기분이었다. 길바닥에는 숱한 요철 하나 없는 듯했다. 서울 변두리의 다세대 주택 오 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오른쪽 집. 성화는 벌써부터 실실 웃음이 났다. 정작 그 애를 마주하면 웃음기를 쏙 거두고 '왔어?' 따위의 상투적인 말이나 하겠으나―홍중도 피차일반일 테다―오늘은 기어코 꼬옥 안아버릴지도 몰라. 여섯 자리 도어록 비밀번호를 빠르게 눌렀다. 짤막한 멜로디가 울렸다. 성화는 먹거리를 담은 봉투를 왼팔에 끼고, 오른손으로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머리 위로 현관의 센서 등이 켜졌다. 어라. 거실 한복판에는 이미 불이 켜져 있었다. 먼저 와있었나봐. 연락이라도 주지. 성화는 느리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는 정말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는데.

거실 한복판에서는 해괴한 광경이 펼쳐지는 중이다. 그 좋던 운은 다 어디로 가고 이런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나. 성화는 품에 안은 종량제 봉투를 멀거니 떨어트렸다. 발등을 용케도 빗나간 무게는 곧장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패키지가 튼튼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오늘 하루치의 운이 동나버린 건지. 홍중의 몫으로 샀던 요거트 팩에서 철퍽, 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났다. 내용물이 사방팔방 기세 좋게 튀어 러그 위에 들러붙었다. 거실의 공기 중으로 새콤달콤한 향이 끼어들었다. 성화는 그제서야 맥이 탁 풀린다는 말이 무언지 실감했다. 살아생전 처음 있는 일이다. 사는 내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도 못한 일이고.

다음 중 하루 종일 비어있던 집에 먼저 들어와 있는 사람으로 적절치 않은 것을 고르시오.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으며 가택수사 중인 경찰. 어차피 집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은 마찬가지인 빈집털이범. 인간에게 적대적인 외계인. 느닷없는 맹수. 그 외 기타 등등 평상시라면 생각할 가치조차 없으리만치 황당한 존재들. 단언컨대 성화는,

“……치우는 것 좀 도와줄래.”

우리 집에 애인이 둘, 같은 상상은 해본 적이 없다.







목요일

홍중과의 전화가 끊겼다. 그러니까, 진짜 홍중. 물론 제 양옆에 있는 홍중‘들’이 가짜인 것은 아니지만……성화는 감당이 안 될 만큼 방대한 오류에 하던 생각을 똑똑 끊어먹었다. 그 사이 자정이 홀짝 넘어버렸다. 슬슬 잘 준비를 해야 하건만 이래서는 자러 갈 수도 없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닳디 닳은 속물 같지만 통장 잔고. 못 먹어서 한이 맺힌 사람 같지만 냉장고 속 식재. 쑥스러운 일이지만 사람들의 칭찬과 응원. 구닥다리라 해도 마냥 좋기만 한 연인의 애정 표현. 세상에는 다다익선이라는 말을 갖다 붙일, 멋진 존재들이 많다. 성화는 원통 모양으로 둘둘 말린 러그를 황망히 내려다보았다. 차라리 이 러그에만 신경을 쏟고 싶었다. 그냥 세탁기에 넣고 돌려도 될까? 바닥 걸레질은 꼼꼼히 했던가? 다분히 도피적인 생각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난데없는 삼자대면이 이루어지는 식탁. 어떻게든 구석을 향해 굴러가려는 성화의 눈. 그러나 시야 가장자리에는 자꾸만, 벼락처럼 떨어진 김홍중‘들’이 모서리처럼 턱턱 걸려 왔다.

“……그럼 여기가 정확히 어디예요?”

먼저 입을 연 것은 좀 더 앳된 쪽이다. 제가 얼마나 미래에 온 거에요? 집이 좀 미래지향적이긴 한데……. 여기 서울인가요? 그럼 저 학교는 어떻게 가요? 학원은요? 저 얼마 안 있으면 모의고사란 말이에요. 적잖이 걱정인가보다. 앳된 쪽의 늘어진 눈썹은 눈에 띄일 정도로 걱정을 쑥쑥 빨아들였다. 학교 끝나면 학원. 학원 끝나면 과외. 필기구를 쥔 손은 문제집 위를 쏘다니느라 늘 저릿저릿한지, 자주 손을 쥐락펴락하는 버릇이 남아있다. 단정하게 잘린 머리. 꼴에 셔츠 단추 두어 개를 풀고 넥타이도 안 했건만 바짓단은 단정한 교복 차림. 성화의 기억이 맞다면 저 애는 지금 십일 년을 거슬러 올라왔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고집은 세도 영특한 면이 있었으니 결국에는 이 사태를 수긍할 것이다. 성화가 신뢰인지 헛된 기대인지 모를 것을 하고 있을 때에, 앳된 쪽에서는 그러면, 형이, 하며 말을 골랐다. 성화는 앳된 쪽이 입을 열기를 기다린다.

“성화형이네요.”

성화가 잔뜩 도리질 치며 질색했다. 나는 그냥 나이 든 네 친구일 뿐이야. 네가 알고 지내는 걔가 자란 것뿐이라니까. 예의 차릴 필요가 뭐 있어! 성화는 구구절절 항변했다. 그러다 갑자기 스스로가 ‘형이라고 불러’ 같은 소리를 하며 애써 젊어 보이려는 사람 같아서 진저리가 났다.

“그래도 지금 저보다는 연장자잖아요.”

그렇네. 내가 얘가 꽉 틀어막혔다는 말이 잘 어울릴 만큼 고지식한 걸 간과하고 있었네. 성화는 작게 고개 저었다. 고지식하기만 세면 다행이지 고집도 세다. 그건 사람이 날 적부터 가지고 있는 속성 같은 것이다. 성화는 바싹 마른 제 미간을 문질렀다. 동시에 곁눈질로 나이 든 쪽을 훔쳐봤다. 나는 쟤한테 형이라고 부를 생각이 없는데. 그러나 나이 든 쪽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피곤한 얼굴이다. 하다못해 이새끼 저새끼 같은 그리운 말로 불려도 그러려니 할 것 같은, 트집 잡히기 싫은 뉘앙스가 푹푹 풍겼다. 이제는 앳된 쪽도 입을 다물었다. 학교고 학원이고 먼저 이야기를 꺼낸 주제에. 조금 상기된 표정이었다. 생각도 못 한 나날에 찾아온 시간 여행이라니. 그것도 알 수 없는 미래로. 모험심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보통 어릴 적 자신을 만나면 좀, 설명하지 못할 부류의 벅찬 감정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지금의 홍중보다 다섯 해 정도는 나이 들어 보이는, 굳이 포장해 말하자면 성숙해 보이는 쪽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성화는 그 낯빛을 안다. 무언가 께름직한 것을 만났다는 듯한 표정. 아마 청소년기의 자신이―남 보이기에 부끄러울 만큼―재미없는 사람인 걸 복기한 셈인지라 마냥 떨떠름하겠지. 성화가 겪어본 적 없는 시간대의 홍중이라도 그 표정은 쉬이 읽어내릴 수 있다. 함께한 세월은 무시 못 하는 법이니까. 그래도 저 미묘하게 들뜬 애를 보살펴 줄 어른이 하나 더 는다면 나쁠 것도 없지 않겠어. 어쩌면 과거의 자신에게 멋들어진 조언을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어린 홍중이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부차적인 문제이나―결국 성화는 도움을 청하듯, 지친 얼굴의 홍중을 다시금 곁눈질했다. 둘의 시선이 잠시 맞닿았다. 그간 홍중과 수천수만 번은 눈맞춤을 해왔는데. 성화는 불현듯 어색함을 느꼈다. 역시나 시간의 거리는 이쪽과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구나.

“야, 너.”
“어?”
“……아냐, 너 말고.”

야 그리고 너. 성화는 단박에 답한다. 그러나 나이 든 홍중은 어색하게 정정에 나섰다. 나를 부른 게 아니야? 성화는 자연스레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앳된 쪽에게 어른 둘의 이목이 몰렸다.

“너는 네 시간대로 돌아가면 여기 있었다는 걸 잊어버릴 거야. 아무도 네가 여기 온 줄도 모를 거고. 나도 마찬가지고. 얘랑,”

나이 든 쪽이 성화를 가리켰다. 성화는 어색함보다 불편함을 느꼈다. 제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게 아니라, 나이 든 홍중의 표면에서.

“이 시간대의 나만 기억할거야. 지금 이 시간에서 살아가는건 이렇게 둘 뿐이니까. 아까 이 시간대의 너랑 통화한 거 기억나지? 일주일만 딱 버텨. 돌아가면 네 시간은 아무렇지도 않게 흐를 테니까.”
“…….”
“그리고 이상한 소리는 하지도 말고.”

앳된 쪽의 눈은 세모꼴이 됐다. 성화는 대놓고 마른 세수를 했다. 내 편이자 꽤 괜찮은 보호자가 늘어날 줄 알았는데. 그냥 꼬장꼬장한 어른 하나만 남아있구나.

“넌 무슨 애한테 그런 말을 해……!”
“쟤가 그냥 애야? 그리고 원래 과거의 나를 만나면 좀,”
“좀?”

나이 든 쪽이 앳된 쪽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느릿하게 흘겼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군.

“창피하잖아.”
“야, 내가 쪽팔려?”

앳된 쪽이 툭 끼어들었다. 딱 그 나이 또래다운 투박한 말씨. 그러자 나이 든 쪽의 눈썹이 보란듯 치켜 올라갔다. 어쭈?

“얘한테는 성화형이라며 존대하고, 나한테는 야?”
“네가 나라며.”
“……맞는 말인데 어째 기분이 묘하다, 너?”
“나는 나. 너도 나. 아까 걔도 나인데 뭐가 문제야.”
“미치겠네. 홍중이들아, 너네끼리 싸우면 자기혐오야! 알겠어?”
“지는 뭐 그렇게 대단하게 컸다고.”

내가 너네끼리 싸우면 자기혐오라고 했잖아! 성화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하도 속이 타 냉장고를 열어젖히고 물을 꺼내 벌컥벌컥 마시고 싶은데 일어날 힘도 마땅찮았다. 너도, 그리고 너도 똑같은 너인데. 다 알면서 왜들 그래, 안 그래도 속 답답해 죽겠는데. 서로를 보며 모난 짐승마냥 아르릉대던 과거와 미래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드디어 성화가 끼어들 틈이 생겼다.

“……아무튼. 다시 정리를 해보자.”

홍중이가. 그러니까 지금 이 시간대의 홍중이가. 예기치 못한 사정 때문에 퇴근하지 못하게 됐어. 같이 일하던 사람 중 누가 일을 그만두고 미래에 남기로 했다는데. 그러면 뭐……복귀해야 하는 사람들한테 차질이 좀 생기나봐. 하필이면 이 시간대의 홍중이한테 문제가 생겼고, 시간이 꼬이는 덕에 너는 과거에서 왔고 너는 미래에서 왔고. 김홍중이 여기로 다시 돌아오려면 일주일이 걸리, 내가 말하는 건 이 시간대의 홍중인데, 내가 지금 제대로 말 하고 있는게 맞아?

“맞아.”
“기막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겨?”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알겠는데라니. 알면서 왜 그래? 너 이럴 때마다 짜증나.”

나이 든 쪽이 입을 쑥 다물었다. 앳된 쪽은 어째 기세등등한 표정이었다. 성화가 한숨을 짙게 내쉬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나이 든 쪽이 마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아무튼 꼬맹이―지금 꼬맹이라고 했냐?―우리는 여기 일주일 동안 꼼짝없이 묶여있을 거고, 우리가 활개 치고 다니는 건 아무도 원하지 않을 거니까. 웬만하면 집주인한테 양해를 좀 구하고 가만히 여기에…….

“형. 저희 같이 살아요?”

그러니까 미래에, 저랑 성화랑. 나이 든 쪽과 성화가 마주 봤다. 둘 다 슬그머니 안색이 질려갔다. 그렇네. ‘우리’가 진지한 마음으로 교제를 시작한 건 이십대 중반부터다. 성화는 홍중의 고백을 떠올렸다. 횡설수설 엉망진창. 말하고 싶은 건 또렷하면서 뭘 그렇게 돌려 말하려는지 음, 어, 같은 군말도 잔뜩이었지. 그때 홍중은 애정을 확신한 지 일 년이 채 안 되었다고 말했다. 그런고로 저 꼬맹이―성화는 이 표현을 앳된 홍중 앞에서는 절대 삼가야겠다고 다짐했다―는 성화를 조금도 연애 상대로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니……. 꼬맹이―성화는 이 대목에서 꼬맹이라는 표현이 제 입에 철썩 들러붙었음을 깨달았다―는 아무것도 모르겠구나. 그러므로 이 사이는 꼬맹이―큰일났네―가 바라는 바가 아닐 테다.

“직장이 근처라서.”
“집세 아끼려고.”
“너 이 동네 집값이 얼마인 줄 알아?”
“홍중아, 그런 얘기는 좀 하지 말자…….”

그렇구나. 앳된 쪽이 멀겋게 웃었다. 그 나이 또래의 정제되지 않은 웃음이었다. 지금이랑 똑 닮았네. 성화는 저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식탁 밑으로 늘어진 성화의 발등 위로 무언가가 툭툭. 나이 든 쪽이 건드리는 모양이었다. 내가 너한테 짜증 난다고 해서 그래? 반성하는 마음이 좀 들어? 성화는 이 미적지근한 사과를 받아들일지 말지 고심했다. 어물쩡 넘어가기에는 딱 좋은 가벼움이지만, 각 잡힌 행동이 아니니 더 심술이 났다. 저 발끝을 그냥 둘까, 아니면 냅다 걷어찰까. 성화는 앳된 쪽이 눈치채지 못하게 나이 든 쪽을 노려봤다. 그런데 나이 든 쪽은 누가 보건 말건 상관없다는 듯 열심히 눈짓을 하고 있었다. 휙휙. 성화에게로 고정되었다가 옆으로 날아들듯 치우치는 검은자. 침실 쪽이다. 침실에는 홍중과 성화가 함께 찍은 사진이 크고 작은 액자에 담겨 주렁주렁 널려있었다. 나란히 서있는 채로 피사체가 되었다면 유분수지. 볼을 답싹 붙인 채로 찍힌 것도 있었고, 가볍게 입맞춤하는 사진도 있었다. 앳된 쪽을 침실에 들이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그 순간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홍중아. 먼저 씻을래?”
“형은요?”
“원래 우리 집은 손님 먼저야.”

옷 가져다줄게. 나이 든 쪽이 냉큼 일어섰다. 성화도 겨우 일어나 욕실을 가리키며 맴맴 돌았다. 앳된 쪽은 미심쩍은 얼굴을 하다가도, 성화를 보고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감사합니다, 또렷하게 종알대기에. 성화는 저도 모르게 손이라도 뻗어 어깨나 머리를 쓰다듬을 뻔했다. 아까 발끈한 걸 보니 애 취급 받는 거 제법 싫어하는 것 같은데. 성화는 저 나잇대의 자신을 떠올려봤다. 어리고 철 없는 걸 방패 삼아서 쏘다니다 사고나 치던 옛날 이야기들이 튀어나왔다.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나 정반대의 인간들이었는데.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됐지? 새삼스러운 감상을 하고 있자니 침실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앳된 쪽은 욕실로 사라지고 없었다. 성화는 곧장 뒤돌아 나이 든 쪽을 좇았다.

처음 들여다 놓았을 때에야 또 하나 늘었구나, 하는 감상이 들지. 함께 찍은 사진은 늘 그 자리에 있다 보니 이게 무슨 대수인 줄도 모르고 살았다. 성화는 액자를 차근차근 집어나갔다. 벽면과 가구 위 남는 공간이 텅 비었다. 성화는 나이 든 쪽이 먼저 수거한 액자를 받아 들고 옷장 문을 열었다. 고작 둘이 사는데 옷가지는 왜 이렇게 많은지. 드레스룸이 넘쳐난 덕에 절기와 어울리지 않는 옷은 이 옷장 안에 모셔두는 게 이 집의 암묵적 법칙이었다. 너무 두텁고 너무 얇은 옷가지 사이로 액자가 끼어들었다. 틈을 비집고 들어가지 못한 것들은 이불이라도 덮어주는 양 홍중의 머플러로 대강 가려놓았다. 물 빠진 파란색 체크무늬. 옅게 보풀이 일어나있다. 성화는 그걸 손바닥을 쫙 펼쳐 몇 번 쓰다듬었다. 이거 고등학생일 때부터 두르고 다녔잖아. 성화는 보물찾기에 성공한 듯 반색하려다가 옷장을 쾅 닫았다. 앞으로의 일주일이 막막하니,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천천히 해도 좋아.

“너, 남의 집에 가서 옷장 뒤지거나 그러진 않지?”
“설마 내가 그러겠어?”
“그럼 다행이네.”
“근데 쟤한테 네가 어떻게 남이야.”
“남이지, 그럼. 꼬맹이가 지금 우리에 대해서 뭘 안다고.”

꼬맹이, 나이 든 쪽은 냉큼 튀어나온 단어에 설풋 웃었다. 성화는 물소리가 쏴아 들려오는 문 너머의 욕실의 눈치를 보았다. 도로 닫힌 옷장에 시선을 돌리려는데, 스치고 지나간 나이 든 쪽의 표정이 참 미묘했다. 확실해, 이건 불편함이야. 성화는 섭섭한 마음이 반, 그리고 제 애인의 어지간한 낯가림에 답답한 마음이 반이었다. 그러다 보니 부지불식간에 서운함이 밀려들었다. 쟤한테 내가 어떻게 남이냐고 했지? 나도 너한테는 남이 아니잖아. 성화는 깊게 호흡했다. 자신이 굉장히 기민한 상태에 처해있으니, 별것 아닌 일에 감정이 들쑥날쑥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이 집에 있는 홍중이란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 하나와, 미래에서 왔다는 애. 어느 쪽도 사건의 중심부에서 허덕이는 이 시간대의 김홍중은 아니다. 누구를 잡고 물고 늘어지던 괜한 하소연이다. 그 사이 나이 든 쪽은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었다.

“이거 안 챙겼어.”
“뭐가 어디 있는지 잘 아네.”
“나도 이 집에 살았었거든?”

나이 든 쪽이 손을 폈다. 단단하게 새겨진 손금 위에는 스티커 사진이 앉아있었다. 조잡한 하트와 별 모양의 스티커. 서로의 정수리에 요란한 색감의 펜으로 그린 왕관. 시간제한으로 다 적지 못한 바보, 라는 글귀. 지난 기념일에 찍은 것이다. 일식집에서 데운 정종을 마시고 나오니 아차 하는 사이에 취해버려서. 간만에 느끼는 취기가 기분 좋아서. 하필이면 길가에 구식 스티커 사진 기계가 보여서 신기하고도 반가운 마음에. 나이 든 쪽은 이 엄지손가락만 한 사진을 잘도 찾아냈다. 성화는 내심 부끄러웠다. 이걸 잊고 있었다니. 그래서 화제를 돌렸다. 화요일에만 해도 그 애한테 말 돌리지 말라는 말을 했었는데.

“너 몇 살이야?”
“서른셋.”
“……잘 늙었네.”

욕실에서는 솨아 하는 소리가 잠시 잦아들었다. 성화는 거기에 맞춰주기라도 하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

사실 네가 그렇게까지 늙은지는 잘 모르겠어. 네가 엄청 원숙하게 보이는 건 절대 아니야. 아니, 일주일 뒤에 너를 다시 만나면, 겨우 집에 돌아온 너는 훌쩍 늙어있을 것 같아. 보름에 일주일을 더한 것보다 더. 나보다 먼저 어른이 돼서. 그것도 까마득한 어른이. 다시 만난 네 눈에는 내가 애처럼 보일지도 모르지. 그런데 자꾸만 걱정돼 죽겠어. 너도 이 출장 기억하지? 거기 밥이 입맛에 안 맞았다며. 너무 짰다며. 그때 잠은 제대로 잤어? 물론 네가 머리만 대면 어디서든 잘 자는 거 알아. 그런데도 자꾸……자꾸 네가 마음에 걸려. 유치하게 궁금해. 하루 종일 뭘 하는지, 뭘 봤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내 생각을 했다면 언제 어디서 했는지, 내가 얼마나 보고 싶은지, 나를 얼마나…….

성화는 결국 제풀에 못 이겨 말을 멈췄다. 이 이상 뱉으면 울컥 눈물이라도 쏟을 것 같았다. 홍중은 성화가 따라잡지도 못하는 곳에 있다. 이번 한 번 뿐만이 아니라 매번. 그래서 성화는 자주 초조해졌다. 미래 또는 과거에 물처럼 녹아든 내 연인. 어떤 아주 나쁜 사고 때문에 이 시간대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어디든 가버린 그 애가 미래의 나를 만나든, 과거의 나를 만나든. 어떻게든 나를 찾아간다 한들 지금의 내가 그 애를 못 만나면 나는 어떻게 살지. 성화는 이따금 홍중과 단단히 묶여 있어도 홀로 표류하는 기분이었다. 성화씨도 앞으로 많이 외롭겠어요. 성화는 이제 이 말의 의미를 안다. 물리적으로 혼자 남겨져서가 아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까 봐. 혹시라도 이번 같은 오류 속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할까 봐.

“알아.”
“네가 뭘 알아.”

왜 네가 쓸쓸한 표정을 해. 성화의 기분이 쉴 틈 없이 오르내렸다.

“너도 미래로 돌아가면 여기서의 일은 다 잊어버려? 꼬맹이처럼?”
“응.”
“근데 너, 아까 이 집에 살았었다고 했지?”
“……그치.”
“우리 나중에 떨어져서 살아?”

성화는 나이 든 쪽의 눈을 보고 직감했다. 거짓말. 우리가 왜 따로 살아. 우리 이 집 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보러 다니는 집마다 찬장 열어보고 물 틀고 온갖 난리를 다 피워가면서 겨우 얻은 집인데. 내가 이 집을 너만큼이나 사랑하는데 어떻게 따로 살아,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였으나 정작 언어가 되어 나온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냅다 손을 들었지. 그리고 나이 든 쪽의 가슴팍을 맵게 내리쳤다. 짝, 하는 소리가 단단했다. 나이 든 쪽은 펄쩍 뛸 듯 놀랐다.

“내가 이직해서 그랬어.”
“왜?!”
“하도 힘든 일이잖아. 너도 내가 이 일 하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뜨끔한 말. 성화는 금방 표정을 갈무리했다. 나이 든 쪽만 어른인 것은 아닌 터이다.

“그럼 너는 어디에서 지내?”
“경기도로 빠졌어. 데이트는 주말에 몰아서 하고.”
“내가 너 따라가겠다고 안 그러든?”
“……내가 여기 있으라고 했어.”
“나도, 나도 데려가지,”

너는 내 마음을 너무 몰라. 나는 네가 시간 사이를 누비겠다면 내 공포 따위는 얼마든지 인내할 수 있는데. 나는 그냥 같은 집 안에서 너랑 알콩달콩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 이직을 하는 것도, 집을 새로 구하는 것도 모조리 피곤하겠지. 하지만 내 마음은 그래. 우리가 따로 떨어져 사는 건 이제 상상도 할 수 없어. 그러나 이번 역시 침묵한 성화는 다시금 손을 들었다. 그리고 이미 타격한 곳을 또 때렸다. 나이 든 쪽은 결국 악, 하고 짤막하게 비명을 질렀다. 꼴 좋다. 어디 한 번 된통 화풀이 당하고 돌아가라지. 성화는 홍중과의 유일한 연락 수단인 전화기를 끌어안았다. 언제 들어봐도 보통 묵직한 게 아니다. 안방을 나오자마자 욕실 안에서 고함이 들렸다. 야, 김홍중! 옷 가져다준다며!



-



빨간 꽃대가 올라온 베고니아 화분에 물이 쏟아졌다. 아침의 비스듬한 해가 물줄기에 반사되어 여울 속 사금처럼 빛났다. 조르르 내리던 물줄기는 흙을 담뿍 적셨는데, 물뿌리개는 도무지 기울인 자세를 고쳐잡지 못했다. 결국 화분의 물받이에 흙탕물이 고이다 못해 넘쳐버렸다. 성화는 그제야 다급히 휴지를 찾았다. 휴지를 붕대처럼 손에 둘둘 감아 자리로 돌아가니, 흙탕물은 창틀 아래로까지 졸졸 흐른 뒤였다. 물을 먹여 닦아내는 행동은 어째서인지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이러다 뿌리가 썩겠구나. 성화는 물받이에 축축한 휴지를 밀어 넣고는 한숨지었다. 성화는 어제의 제 운을 회상했다. 너무 쉽게 운을 소진해 버렸나. 그래서 지금이 이렇게 엉망진창인가. 자책이 범람했다. 성화의 양 눈두덩이 도톰히 부어있었다.

꼬맹이에게는 어른의 도리로서 침대를 내어줬고, 나이 든 쪽에게는 소파를 내어줬다. 홍중‘들’에게 몸을 뉘일 곳을 주고 나니 성화가 발 뻗을 곳이 없었다. 남은 것은 바닥뿐인데 러그가 세탁기에 들어간지라 등 배길 일만 남았겠다 싶었다. 새벽이 어스름히 땅에 깔렸고, 고작 몇 시간 뒤에 집을 나서야 했음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성화는 침실에서 끌고 나온 전화기를 낑낑 옮겨 테라스로 나갔다. 좁은 마루에 비스듬히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다. 저만치 떨어진 가로등 아래에서 어린 커플이 도둑질하듯 입을 맞추고 떨어지는 게 보였다. 성화는 울적함을 숨기지 못한 채 수화기의 버튼을 눌렀다. 꾸욱 꾸욱. 어째 버튼이 평소보다 더 더디게 눌리는 듯 했다. 통화 연결음이 제대로 들리기도 전, 홍중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가 아니라, 성화야. 냅다 제 이름을 불러오는데 거기서부터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너 그냥 오면 안 돼? 대체 누가 미래에 남겠다고 고집을 피워서 이 사단을 만들었어? 거기서는 왜 이거 하나도 제대로 처리를 못 해서 널 일주일이나 더 거기에 있게 해? 그 누구도 어찌 무마할 수 없는 질문이 터져 나왔다. 성화는 홍중에게 치근치근 조르는 스스로가 낯설어 또 마음이 덜걱 주저앉았다. 너도 답답하지. 그럴 텐데 내 생떼까지 들어주느라 갑갑하지. 그런데 나는 어떻게 해. 무작정 참기는 너무 힘들어. 얘도 쟤도 너라지만 나는 당장 네가 필요해. 너 밥 해주려고 장도 봐왔는데. 요거트도 샀었는데. 그즈음 되니 성화는 제가 말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슬그머니 의문이 들었다. 제 귀로 들려오는 제 음성은 울먹임을 못 이겨 멍청하게 우물대는 소리일 뿐이어서. 그런데 홍중은 그걸 가만히 들어주고만 있었다. 응, 그러게, 어떡하냐. 간간히 맞장구를 쳐오니 성화는 거기에 더 먹먹해졌다. 아, 정말 홍중이 손 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나는 이 일주일을 순번표처럼 손에 꼭 붙들고 마냥 기다려야만 하는구나. 마음은 참담했으나 울음은 슬금슬금 멎어갔다. 홍중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무언가가 일순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너도 나만큼 화낼 수 있는 거 아니야? 빈말로라도 당장 갈게, 라고 해줄 수 있잖아. 지금의 너나 미래의 너나 너는 내 마음을 너무 몰라. 어쩌면 꼬맹이도 내 마음을 모를까?

자주 연락하자. 이 말을 서로 열댓 번은 더 주고받고 나서야 통화가 끝났다. 성화는 미약하게 남은 울음 덕에 한참을 더 훌쩍댔다. 가로등 아래의 커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쌀쌀한 밤공기 덕에 팔뚝에는 줄곧 소름이 돋아있었다. 손등으로 벅벅 닦아낸 덕에 눈가와 볼이 따끔거렸다. 성화는 애써 담담한 척 테라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 어둠 속에서도. 소파에 누운 나이 든 쪽이 눈에 띄게 움찔대는 게 보였다. 여태 못 잤나. 아니면 나 때문에 깨버렸나. 성화는 깨금발로 걸어 부엌으로 갔다. 전화기를 마뜩히 둘 곳이 없어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뒤를 도니 나이 든 쪽은 몸을 일으킨 채, 다 잠겨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여기서 자. 내가 바닥에서 잘게. 말끝에서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덕분에 등 배기는 꼴은 면했지만 얼굴 꼴은 엉망진창이었다. 까치집을 화려하게 지은 앳된 쪽은 아침 인사를 하다가, 성화의 꼴을 보아하고는 조용히 식탁에 앉았다. 성화가 퉁퉁 부어있지만 않았더라면 나이 든 쪽과 또 투닥거렸겠지. 우유와 사과가 끼어든 아침 식탁. 성화는 홍중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리얼을 퍼먹는 홍중‘들’ 앞에서 차마 또 왈칵 울어버릴 수는 없어서, 또 꼬맹이 앞에서 사랑한다는 소리를 꺼낼 수는 없어서 통화를 황급히 마무리했다. 그게 너무 아쉬웠다. 이럴 거면 그냥 전화기를 테라스에 두고 올 걸 그랬어. 후회하며 양치하고 옷을 꿰입었다. 집을 나서며 홍중‘들’에게 배웅을 받았다. 잘 다녀오세요. 갔다 와. 성화는 아무리 고심해도 오늘 하루 일과를 멋지게 해낼 수 있을 용기는 나지 않아서,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도망쳤다.

“얘 좀 봐, 다 잠겨 죽겠다.”

정신을 어디다 빼뒀대? 성화의 입사 동기는 천연덕스럽게 말을 붙였다. 이 베고니아 화분은 유행의 산물이다. 사무실이 삭막하니 선인장이나 다육식물이라도 기를까봐요. 누군가 중얼거린 소리가 어찌나 솔깃하던지. 그 후로 온갖 푸릇한 것들이 우후죽순으로 책상과 창가에 자리 잡았다. 유행이 조금 시들해질 무렵, 성화는 간만에 홍중과 함께 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조금 짜게 끓여진 찌개를 홀짝이며 나도 그런 거나 키워볼까봐, 했더니. 다음날 홍중은 베고니아 화분 하나를 사 왔다. 성화는 꽃을 보는 식물은 염두에 둔 적이 없었다. 선인장이나 다육식물처럼 말려 죽일 듯이 물을 줘도 살 수 있는 거야? 난색을 표하니 거기다 대고 홍중이 뭐라고 했더라. 관리가 많이 필요하지 않아서 원예 초보들이 많이 고르고, 물도 자주 안 줘도 되고, 분갈이도 안 해줘도 되고……. 꽃집에서 어떻게 들볶였는지. 홍중은 베고니아의 줄줄 장점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내가 못 살아, 하며 가져다 기르던 와중이었는데. 이게 난초라도 됐으면 매일 이파리도 닦아줄 만큼 애지중지했다. 그런데 정말 이걸 어째. 물을 너무 줘버렸네. 그러나 입을 삐죽대는 입사 동기야말로 화분 여럿을 과습으로 망쳐놓은, 부서 내 흉작가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죽상이야. 어제 울다 잤어?”
“아닌데?”
“그럼 왜 그래.”
“미래가 무서워서.”
“엄청 포괄적인 고민이구나.”

난 건강검진이 제일 무섭더라. 기름진 거 맵고 짠 거 술 담배 하지 마세요, 하는 말은 귀에 딱지가 앉게 들어서 그러려니 하는데. 갑자기 종양이 발견됐다고 해봐. 조직검사를 해야 한대서 개복을 했더니 세상에 악성 종양이래. 얼마나 무서워. 그래서 검진 받으라고 연락 올 때마다 무서워 죽겠다. 초조해서 무단결근하고 탱자탱자 놀고 싶어.

“검진 받으라고 연락 왔어?”
“어엉. 아, 이것도 미래인가?”
“건강검진이?”
“아직 안 겪어봐서 모르지만, 뭐가 들어있는지는 꿈에도 모르잖아.”

성화는 화분을 살짝 들어 올렸다. 아직도 화분 바닥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운을 다 쓴 것치고는 무탈한 하루가 지났다. 그러나 그게 행운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피로가 감각을 더디게 만들었다. 성화는 퇴근길 지하철 승강장에서 망설였다. 역에는 급행이 들어오고 있었다. 주위는 성화와 똑같은, 어지간히 지친 직장인들로 그득했다. 급행을 탈까, 말까. 조금이라도 일찍 집에 도착하면 홍중과 더 이르게 통화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막상 집에 들어가기는 두려웠다. 지금도 충분히 현실감이 넘치는데, 현관을 밟는 순간 채석장의 자갈들 같은 걱정거리가 와르르 쏟아질 게 빤했다. 성화는 저도 모르게 손끝을 깨물다 황급히 입을 벌려 손을 놓아주었다. 손가락 마디에 남은 잇자국을 보는 사이, 사람들이 마구 몰려들었다. 눈앞의 급행열차는 찌르면 펑 하고 터질 모양으로 꽉꽉 채워졌다. 열차는 정차한 지 한참이 지나고서야 문을 닫고 떠났다. 성화는 그걸 잠자코 지켜보다가, 한산해진 줄의 앞쪽을 향해 비척비척 걸었다. 아, 나한테는 선택지도 없는 건가.

“형!”

현관의 센서 등이 켜지기도 전에 부름이 들렸다. 거실의 소파 너머로 앳된 얼굴이 뿅 튀어나왔다. 텔레비전이라도 틀고 있지. 얘는 이 적막 가운데에서 하루를 보냈나. 앳된 쪽은 헤실헤실 웃기 시작했다. 자신을 반가워하는 홍중 앞에서 차마 죽상일 수는 없어서, 성화는 입꼬리라도 올려 보였다. 애는 애인가. 지금이나 미래의 홍중이라면 눈치챘을 법한 제 껄끄러운 미소를, 앳된 쪽은 알아채지 못한다. 성화는 빠듯한 어깨를 주무르며 집 안을 휘이 둘러보았다. 나이 든 쪽은 보이지 않는다. 욕실 문은 불이 꺼진 채 열려있었고, 침실에서도 기척이 없다.

“걔는 어디 갔어?”
“담배 피운다고 잠깐 나갔다 온대요.”

앳된 쪽이 얼굴을 찌푸린 채 종알거렸다. 저 형한테 담배 배우나요? 성화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홍중아.”
“네.”
“혹시 내가 네 앞에서 담배 피웠어?”
”어……. 아직이라고 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 아직인가봐. 잘 들어. 난 그때 그냥 네 앞에서 똥폼 잡고 싶었어.”

나도 제대하고 끊었으니까 너는 평생 입에 대지도 마, 알았어? 성화가 당부했다. 힘주어 단단히 말할수록 낯이 뜨거워졌다. 온갖 과목이 부대끼는 학원가 골목 뒤편이 떠올랐다. 밤 열 시에 쭈삣대며 걷던 홍중을 잡아 와서는, 대략 ‘넌 이런거 못하지’ 같은 마음으로 뻐끔대던 어린 성화. 그때 홍중은 제 백팩 끈을 양손으로 야무지게 부여잡고는, 연기가 눈앞을 스칠 때마다 눈가를 찡그렸다. 종내에는 콜록거리길래, 성화는 내심 홍중을 상대로 이긴 기분이었다. 너보다 어른인 나. 너보다 불량하고 잘 노는 나. 반짝하고 사라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유치한 허세. 내가 왜 그랬을까. 성화는 앳된 쪽을 계속 마주하기가 부끄러워 고개를 풀썩 숙였다. 목덜미까지 화끈거렸다. 앳된 쪽은 성화의 머리꼭지만 멀거니 보고 있었다.

성화가 기억하는 홍중은 흡연자가 아니었다. 대학 때 주는 술을 못 빼 전부 주워 마시다 필름이 끊긴 것은 봤어도 담배까지 물고 다니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럼 대체 언제 배운 걸까. 지금의 홍중과 나이 든 쪽의 사 년 사이? 아니면 나한테 철저하게 숨기고 살았나? 추측만 해서는 풀리지 않는 법. 성화는 홍중과 통화하며 직설적으로 묻기를 택했다. 그 사이 머리꼭지 주변에서는 앳된 쪽이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났다.

“내가 창피해하는 게 재밌어?”
“아뇨, 그게 아니라요.”

앳된 쪽은 고개를 파드득 저었다. 머리게 제 위치로 돌아왔을 때에는 볼살이 살짝 흔들린 것 같았다. 앳된 쪽은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그냥, 저랑 형이랑, 아직까지 알고 지내는 게 신기해서요.

성화도 그게 신기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쟤와는 도통 어울리기 힘들겠구나, 하고 단번에 알아챌 만큼 끄트머리에 서 있는 사람들. 그게 홍중과 성화였다. 자석의 같은 극. 그런데 누군가 우리를 잡고 억지로 붙여놓기라도 한 걸까. 고등학교를 떠나면 다시는 안 볼 것 같았는데, 되려 대학 때에 더 가까워졌다. 홍중도 이따금 이야기했다. 나 대체 너랑 어떻게 친해졌지. 성화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게 다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인가 싶어 그러게, 하고 퉁명스레 답했다. 우리는 왜 서로한테 역정 낼 것 다 내고, 싫증 낼 것 다 내고도 끝끝내 붙어 있었나. 이십 대 중반 홍중의 벼락같은 고백 이전은 성화에게 참 아리송했다. 서로에게 제 살이라도 갈라줄 듯 사랑하기 이전의 우리는 대체 무엇이었나.

그건 그렇다 치고. 홍중이 제 생각을, 것도 낯간지러운 생각을 저렇게 쉽게 말로 표현할 수 있던 애였던가? 성화는 곧장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 들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귀하게 하는 사람인데. 어쩌면 저는 엿새 뒤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돌아가니, 생각나는 것을 막 뱉자는 심산인 건가. 앳된 홍중을 혼자서만 기억할 노릇인 성화는 불쑥 샘솟은 짓궂음에,

“혹시 나 별로야?”
“네?”
“너, 지금 나 그다지 안 좋아해?”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앳된 쪽은 어릿어릿한 웃음을 싹 거뒀다. 표정이 사라진 건 잠시간이다. 이내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정곡이라도 찔렀나, 성화가 씁쓸해할 찰나 이제 앳된 쪽은 낯빛이 허옇게 질렸다. 마냥 화가 났다고 하기에는 원망이 훨씬 더 앞질러 갔다는 표정. 그러더니 전보다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머리칼이 붕붕 흐트러졌다.

“절대 그런 적 없어요.”

앳된 쪽이 단호하게 잡아뗐다. 그런 적 없으면 그런 적 없는 거지, 절대 그런 적 없을 건 뭐람. 그러더니 토라졌는지 팩, 하고 고개를 돌렸다. 앳된 쪽의 입매는 끄트머리까지 꽉 다물렸다. 더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표시다. 성화는 제 어깨를 마저 주물거렸다. 내가 너무 짓궂었나. 지금의 홍중이라면 성화의 장난에 그래, 하고 시큰둥하게 응수할 텐데. 그러면 성화는 홍중에게 나도 그랬어, 하며 대꾸할 테다. 너는 너여도 어린 마음은 좀체 따라잡기 힘들구나. 성화는 단단히 약이 오른 홍중을 어떻게 대해야 할 줄 몰라서, 괜히 부엌으로 가 냉장고만 열고 닫았다. 무어라도 마시고 싶었으나 금세 까끌해진 목은 무얼 삼킨다 한들 버석버석할 것만 같았다.







금요일


“안 피우는데?”

진짜야, 너 이러면 나 좀 억울해. 수화기 너머 홍중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고는 괜한 소리를 했다. 내가 너 피우는 것만 봤지 따라 할 생각은 없었다? 홍중‘들’은 그 소리를 주워듣고서는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보아도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려는 태도다. 성화는 다시금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성화는 수화기를 막고 스산하게 읊조렸다. 웃지마. 앳된 쪽이 코를 훌쩍였다. 심각한 성화와 달리 주변은 영 부산스럽다.

홍중은 제 미래를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성화는 그 뚝심을 이해했다. 홍중은 출장을 다녀오면 이것저것 이야기했다. 보고 들은 타지의 다른 시간에 관한 시시콜콜한 정보들. 그리고 먼 여행을 다녀온 뒤 그리운 수원 같은 집에 돌아온 소감. 언젠가 오십 년 후의 미래에 다녀온 날, 홍중은 성화의 머리맡에서 오래도록 속닥거렸다. 성화는 까무룩 잠들 것 같은 피곤 속에서도 홍중의 말을 주워듣느라 애썼다. 담담하게 이어지던 말은 이러했다. 나는 미래로 일을 떠나면서도 내 스스로에 대해 알아본 적이 없어. 내 앞날이 어떤지는 내 눈으로 확인할 거고, 내가 직접 선택할 거야.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궁금하지 않아. 혹시라도 훗날의 내가 실망스러운 모습이 되더라도, 나는 그게 나의 최선이었을 거라 믿어. 그래도 하나 정도는 꼭, 미래에도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게 있기는 해. 우리가 서로의 옆에 있는 것. 성화는 그즈음 눈을 감고 잠에 들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 어디에도 없었지만,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잠든 홍중을 향해 중얼거렸다. 너는 참 빙빙 돌려 말하는 걸 잘한다.

그러므로 성화는 제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다. 홍중의 뜻이 그렇다면 당연히 따라주고 싶으니까. 성화는 낑낑대며 전화기를 옮겼다.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 위로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수화기에 바싹 입을 붙여 말했다. 야.

“사랑해.”
“나도.”
“똑바로 말해라.”
“나도 너 사랑해.”

성화는 꾸물대며 전화기를 매만지다가, 또 연락하겠다 말하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다시금 돌아간 식탁에는 멀찍이 떨어진 홍중‘들’이 있다. 성화는 의자를 빼 앉고서 식기를 달그락댔다. 성화는 문득 이 집에 덜컥 내려앉은 두 홍중이, 제가 없을 때에는 무엇을 할지 궁금해졌다. 앳된 쪽은 또 텔레비전도 틀지 않고, 가시방석에 앉은 손님처럼 가만히 있을지. 나이 든 쪽은 또 집 밖에 나선다면 얼마나 돌아다닐지. 여하튼 둘 다 이 집에 든든히 묶여있는 것은 확실하므로,

“너 설거지 해.”
“저요?”
“너는 빨래.”
“…….”

청소는 바라지도 않아. 성화는 홍중의 지난 전적을 떠올렸다. 부엌 청소 좀 하랬더니 사방팔방 기름때를 옮겨놨고, 욕실 청소 좀 하랬더니 물때가 여전했다. 기껏해야 청소기를 들고 이리저리 오락가락하는 것마저 영 서툴렀지. 괜히 속이 바글바글 끓었다. 그사이 앳된 쪽이 현관까지 따라 나왔다. 나름 막중한 임무를 받기라도 한 듯 결연함이 얼굴에 잔뜩 어려있었다. 그러고서도 바보처럼 코를 훌쩍, 했다. 짤막하게 찡그렸다 펴지는 미간이 팽팽했다. 넌 역시 젊구나. 성화는 앳된 쪽을 바라보고 있자면 자신이 꼭, 아주 오랜 시간을 살다 온 노인 같았다. 그게 누구에게도 좋은 착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녀올게, 성화는 맥없이 웅얼대며 나이 든 쪽을 살폈다. 끝끝내 뒤통수만 보이는 나이 든 쪽은 어쩐지 처량해 보였다.

억지로 급수한 꼴인 베고니아는 겉보기에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성화는 탁상 달력에 쓰인 ‘물 주는 날’이라는 글자 위에 가로로 선을 죽죽 그었다. 물이 없으면 죽는데 물이 많아도 죽는다니. 성화는 그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별안간 모든 것들이 낯설고 기묘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더할 나위 없이 신경이 곤두섰을 때. 예민한 성격이 몸을 좀먹어 피로를 느낄 때. 그럴 때마다 드는 이질감. 성화는 양 손을 교차해 제 팔뚝을 꾹 쥐었다 놓았다. 손에 닿는 셔츠의 촉감과 살이 눌리는 압박감도 어째 요원하기만 했다. 그나마 위안 삼을 것이라고는 오늘이 금요일인 것 뿐이다.

이제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잘 모를 지경이었다. 뒷맛도 기억나지 않는 점심 식사 후의 탕비실. 모두들 제자리로 돌아가 권태로운 표정을 짓고 있으니 이 좁은 방은 성화의 차지다. 이게 인스턴트 커피인지, 커피 향이 나는 설탕물인지 모를 만큼 수상한 레시피가 종이컵에 담겨 찰랑거렸다. 작은 진동에도 이리저리 움직이는 표면을 보는데 전화가 울렸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 성화는 번호를 잠시간 들여다보다 스피커에 귀를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시간교정연합입니다.”

박성화님 맞으세요? 저 송년회에서 뵈었던 김사원 동기 이△△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성화는 헛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겨우 잘 지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잘 지냈을 리가. 성화는 차마 홍중의 의지도, 애먼 홍중의 동기도 탓할 수 없으니 종이컵만 만지작댔다. 손이 뜨거울 정도로 온기가 넘실거렸다. 홍중의 동기는 길게 이야기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사고와 관련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보고 받은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할게요. 지금 다른 시간대의 김사원이 자택에 머무르고 있는 게 맞습니까? 생활에 불편함은 없습니까? 김사원의 복귀 지연과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한 보상 지급에 관해서인데요.

성화는 앳된 쪽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그렇게 어렸을 때의 자신이었다. 홍중의 옆을 애매하게 떠돌던 시절. 누가 허투루 흘린 말 한마디에 기분이 상했고 오로지 받아치는 것만이 이기는 방법인 줄로만 알았다. 삐죽빼죽 선 날을 두른 채 그게 영원히 제 무기가 되어줄 수 있을 거라 믿었지. 보상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매일 같이 마음을 졸여야 하는 일주일, 그것도 온전히 신뢰할 수만은 없는 시간을 어떻게 보상할 셈인가. 통장 잔고가 조금 불어난다고 해서 불안이 상쇄될 리 없잖아. 보상은 내가 정당히 치러야 할 일을 감내했을 때에나 주어지는 거잖아. 불만이 거세게 뿜어져 나올 것 같았지만,

“네. 네, 알겠습니다.”

이제 나는 열여덟 살이 아니지. 성화는 울고 싶은 기분을 건조한 대답으로 끊어냈다. 그 사이 손에 쥔 종이컵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찌그러졌다. 뜨거운 커피 향 설탕물이 넘쳐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적셨다. 일방적인 안내에 가까운 통화가 끝나고, 성화는 피로한 얼굴로 개수대에 손을 뻗었다. 화끈거리는 엄지 위로 냉골 같은 물이 흠씬 쏟아졌다. 나이 든 쪽은 이직을 했다니. 미래의 성화는 더이상 홍중이 과거 혹은 미래에 갇힐 수 있다는 걱정을 하지 않을 테다. 성화는 낙수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과거와 미래는 바꿀 수 있다. 홍중의 일이, 그리고 홍중의 동기와 선배와 후배가 하는 일이 그렇듯이. 그러나 미래는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다. 발생한 사건이 좋건 나쁘건 미래는 과거를 답습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지금처럼 홍중이 집으로 곧장 돌아오지 못할 확률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만은 기억해. 끔찍한 기다림을. 성화는 쏟아지던 찬물을 껐다. 홍중이 일주일 뒤 무사히 돌아온다면 당장 이 일을 그만두라고 말해야지. 그렇게 결심했다. 설령 우리가 나이 든 쪽의 우리보다 더 일찍 따로 떨어져 살게 되더라도.

그러나 출장을 다녀온 뒤면 며칠 밤 내내 그곳의 이야기를 하던 홍중이 눈에 밟혔다. 자기 위해 모든 불을 다 꺼버린 침실. 그 와중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눈. 그 눈에는 들끓는 호기심과 모험의 설레임이 그득 담겨있었다. 하나 같이 홍중이 사랑해 마다 않는 자신의 한 부분이었다. 나 때문에 네가 그것들을 포기할 수 있을까. 포기한다 한들 네가 앞으로도 행복할까. 성화의 마음은 쉽게 물러졌다. 컴퓨터 화면 속 커서는 성화의 속도 모른 채 바지런히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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